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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23 (고후 1:12-2:4) 근심이 기쁨으로

5/24/2003 수요일

· 본문: 고린도후서 1:12-2:4 (근심이 기쁨으로)

(12-14)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대하는 중요한 태도들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함, 진실함,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의 태도가 자신들을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들의 결과로 같이 교제하는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들의 자랑이 되고, 자신들 또한 고린도 교인들의 자랑이 될 것이라 말합니다.
이런 자랑은 당시에 바울의 반대자들, 곧 고린도를 방문한 사람들과는 다른 자랑입니다. 반대자들은 그들의 사명을 합법화하기 위해 자격 증명서와 경험을 자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그들이 ‘육체를 따라 자랑’ 했다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1 :18).
그리고 이 자랑의 완성은 각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세워져서 심판의 때에 서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그 순간입니다.

(15-16) 고린도 교회의 불평은 바울이 마게도냐 지역을 떠나기 전에 고린도에 와서 그들을 만나겠다는 계획을 변경한 것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원래는 고린도와 에베소의 교회가 비교적 안정되었을 때 자신이 아시아→ 마게도냐 → 아가야 → 유대를 거쳐 철수하겠다고 그는 편지에 썼습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를 쓴 후에 불가피하게 ‘근심으로’ (2 : 1) 예정에 없던 고린도를 방문해야만 했고, 그 방문 때 마게도냐로 가기 전에 다시 오겠다고 말도했습니다(1:15-16). 그렇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즉시 다시 가는 대신 편지를 썼으며(1 :23 : 2 :4), 원래 계획대로 먼저 마게도냐로 갔다가 그 다음에 아가야로 가기로 했습니다. 고린도인들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보면 바울은 계획을 크게 변경했고, 경건한 지혜보다는 육체의 지혜를 따라서 행동한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17-20) 이런 일을 할 때에 바울이 경솔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자신의 육신을 따라서 인간적인 계획을 세워서 한 일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한 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단순한 일이 아니라, 복음 가운데 된 일임을 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된 일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에 들어 있는 일이기에,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예”라는 긍정의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일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는 영광의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계획한 일은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울이 붙잡고, 그것에 입각하여 유대로 가기 위해서 고린도에 들려서 그들의 도움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랬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되어진 것이기에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선한 마음들이 동반되었고, 이것이 서로 믿음으로 되어진 것이기에 “아멘”으로 화답한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행한 일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고 서로를 돕는 일이었기에 고린도 교회가 그 일에 동참하기를 바랬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옳은 일이고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는 일이기에 담대하게 그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1:21-2:4)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그 일의 보증으로서 성령님을 주셨고 그 일을 확증, 인치신 것입니다. “굳건하게 하다, 견고케 하다”라는 말은 사업 법규에서 그 계약을 존중한다는 매도자의 보증을 의미합니다 (21).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과 우리 사이의 평생에 걸친 관계의 보증자로 서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구적인 보증이십니다. 그리고 “인”이라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어떤 서류의 소유권을 나타내기 위한 특별한 도구로 밀랍에 각인하는 행위입니다 (22).

바울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의 인치심까지 거론한 것은, 자신이 고린도에 가지 못한 것이 절대로 육체적으로나 자신의 지혜로 결정한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에 가지 않는 것이 고린도 교회를 전적으로 위함인데, 가게 되면 바울과 고린도 교회 둘 다에 좋지 못한 영향이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 (23-24). 그 이유는 고린도후서2:1-4에서 보듯이 바울이 근심 중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고, 바울은 그것을 통해 성도들을 근심 시키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2:1-3). 그래서 대신에 이렇게 글을 써서라도 그들을 기쁘게 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방문한 것과 보낸 편지에 대해서는 아래의 Study Note를 참고하세요)

· 생각하는 점: 성도를 대하는 기본 자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진실함, 그리의 그의 은혜로 행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은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부름 받은 자이고 거룩하심이란 다른 세상과 구별되는 삶의 방식을 나타냅니다. 거룩은 인간에게 나올 수 없는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거룩이라는 말 안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부정이 포함되어 있고, 전적으로 하나님 만이 주인 되심에 대한 선포가 포함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5; 베드로전서 1:15-16). 또한 거룩함을 위해서는 진실함이 언제나 동반됩니다 (고린도후서 1:12; 요한복음 17:17; 에베소서 4:24). 거짓의 아비가 사탄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에게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할 때에도 진실을 동반하지 않고 행한다면 그 안에 거짓이 틈타고 성도의 마음에 유혹과 근심을 만들어 내게 되며, 그 안에서 거룩함을 이뤄가기 힘들어 집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우리의 좁은 지식으로 앎으로 판단하고 반응하는, 이런 모습은 없이하고, 더욱 서로 간에 사랑의 마음으로 공감과 이해, 친절함과 관대함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를 대할 때 거룩과 진리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는 삶에서는 자신의 자랑이 들어갈 것이 없습니다. 완전하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역사하심을 알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되어진 은혜의 삶임을 고백하는 것 뿐입니다.

· 암송: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고린도후서 1:12)

· 기도: (1) 복음의 진리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진실함,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이들을 대할 수 있기를 위해서, (2) 그리스도의 가치관과 성품으로 다시 거듭남으로 거짓에 대해서 승리할 수 있는 자들 되기를 위해서, (3) 수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시간이 되며, 우리 심령이 은혜로 충만해 지기를 위해서, (4) 전쟁과 기근과 자연 재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5)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된 복음이 속히 그들에게 들려질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 문을 열어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 Study Note: 바울과 고린도교회에 보낸 4통의 편지들

1. 바울이 고린도에 처음으로 방문한 연대를 A.D. 51으로 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1년 반을 사역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A.D. 52에 브리스길리와 아굴라와 함께 에베소로 향했고 거기에서 그들은 남고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물라는 아폴로를 만나서 그에게 복음을 증거했고 그를 고린도 교회에 보냈습니다 (사도행전 18:18-28)

2. A.D. 53에 아폴로가 고린도에서 사역하는 동안, 바울이 그의 3차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로 돌아왔습니다. 바울은 거기에서 2년 반을 지내면서 에베소를 복음의 전진기지로 만들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고린도전서 5:9에 말하고 있는 첫 번째 편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편지가 이 에베소 사역 기간에 쓰여 진것으로 보입니다.

3. 그리고 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클로에 집안의 사람들로부터 고린도 교회에 있는 오해와 여러 분제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 그리고 그는 스테파나와 브드나도 아가이고 (고전 16:17)로 구성된 교회의 공식적인 대표들을 만났고, 이들을 통해서 바울은 좀더 구체적인 고린도 교회 안에 나뉘어진 문제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답변을 한 것이 지금 저희가 가지고 있는 고린도전서 (실제로는 2번째 편지)입니다.

4.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채 남겨졌습니다. 아마도 디모데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바울에게 전달한 사람일 것입니다 (고전 4:17; 16:10). 그 이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두 번째 방문하려고 결심했고,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로 직접 배를 타고 갔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고린도후서 2:1에서 이야기하는 “근심 중의 방문Painful Visit”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고린도후서 2:5과 7:12에 나오는 한 사람의 행동과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도와 주지 않은 이유일 것입니다.

5. 이 방문과 바울이 에베소로 돌아온 이후에, 바울은 세 번째 편지를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에 보냈습니다(이 편지는 지금 소실되었습니다). 이 편지를 쓴 것이 바울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고후 2:3-4). 그것은 이 편지의 내용이 굉장히 엄하게 꾸짖는 교훈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후 7:8-9). 에베소에서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은장색공들과의 다툼이 있고 (사도행전 19:23-41) 바울은 에베소를 A.D. 56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마케도냐로 향했고, 거기에 가기 전에 드로아에서 먼저 도착하여서 디도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고후2:13). 그리고 그를 만나서 고린도의 상황을 듣기를 희망했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고, 결국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갈 때 디도에 관한 큰 근심과 걱정을 가지고 움직였습니다 (고후 7:5-6). 거기에서 디도를 만났고, 디도가 전해준 좋은 소식과 고린도 교회가 원만하게 잘 해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나쁜 소식도 듣게 되었습니다.

6. 마게도냐에서 바울은 네 번째 편지 (지금의 고린도후서)를 썼습니다.

7. 바울은 그 이후 고린도에 3번째 방문을 했습니다. 그때가 A.D. 56-57 이고 3달 정도 머물렀습니다 (사도행전 20:2-3).

이런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1. 고린도에 첫번째 방문
2. 고린도에 첫번째 편지 (지금 소실)
3. 두번째 편지 (현재 고린도전서)
4. 두번째 고린도 방문 (고통의 방문)
5. 세번째 편지 (지금 소실)
6. 네번째 편지 (현재 고린도후서)
7. 고린도에 세번째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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