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2023 토요일
본문: 민수기 21:1-9 (종에서 자유자로,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오늘 본문은 20장에서 므리바의 물 사건과 이스라엘이 애돔왕이 왕의 대로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난 뒤, 이스라엘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아론이 죽고 대제사장이 새롭게 새워지고 난 뒤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처음으로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한 기록과 다른 한가지는 여전한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앙에 관한 것입니다.
(1-3) 먼저 1-3절은 이스라엘의 최초 승리가 기록된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의 왕의 길로 갈 수 있는권한을 얻지 못했기에 가나안 지역의 남쪽을 의미하는 네겝의 길로 향해 가야 했습니다. 이것을 가나안 사람 아랏지역의 왕이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몇 사람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간청하여서 허락을 받고 그 성읍을 멸하고 그곳 이름을 호르마, 즉 “멸함”이라고 하는 지명을 붙였습니다. 어려움에 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들의 요구에 의해서 완전한 승리를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이 승리가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민족을 상대로한 첫 번째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승리를통하여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실마리를 그들이 눈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하는 첫 승리였습니다.
(4-9)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승리한 이후에 왜 또 바로 이런 불평을 쏟아 내는가?) 이스라엘백성들이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 홍해 길을 따라서 에돔 땅을 우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장에서 에돔 땅을 거쳐 왕의 대로를 갈 수 있도록 에돔 왕에게 부탁했으나 그가 그 부탁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불편한 길로 가는 것에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하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1) 에돔 땅을 우회하러가는 것에 대한 불만 (2)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는가?에 대한 불만 (3) 그래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에 대한 불만 (4)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지 않는가?에 대한 불만 (5) 이 하찮은 음식, 즉 만나를 먹는 것도 싫다 라는 불만. 이런 다양한 불만을 토해 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하나 하나가 불만으로서 당연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존의 편한 길을 돌아가야 하고, 편안한 삶의 터전이었던 애굽을 벗어 나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삶의 기반 장치도 없던, 즉 이제까지 정착민으로소작을 통해 먹고 살았던 우리가 왜 아무 것도 없는 유랑 생활을 했으며, 마실 것 먹을 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광야 생활과 매일 똑 같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은 타당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는요? 기존의 삶을 받아 들여서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번 한 번만 불평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늘 비슷한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민수기 11장에서는 이스라엘과 함께 탈출한 다른 인종의 영향으로 고기가 없는 것, 풍요로운 야채와 향신료를 통해서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에 대해서하나님은 만나를 주셨고, 입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민수기 14장에는 약속의 땅을 앞두고서 그 민족의 강대한 모습에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해서 행하셨던 모든 일들을 잊어 버리고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이끌어 내온 모세와 아론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민수기 16장에는 레위의 자손인 고라와 나단과 온이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기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리더자로 인정한 사람들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하나님이 치셔서 땅이 갈라져 250명이 죽는 사건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와 연결되어서 고라의 죽음으로 백성들이 불평함으로, 하나님이 염병을 주셔서 14700명을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20장에서 므리바에서 물이 없는 것으로 불평을 터트려서, 결국 모세와 아론까지도 약소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일을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사건이 또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 불만족에 하나님께서는 불뱀들을 보내셔서 수 많은 사람들을 물려 죽게 하셨습니다. 이 죽음 가운데 이스라엘백성에 모세에게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여 범죄하였다”고 고백하며 모세에게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 심판가운데에서 자신들을 살려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 심판의 현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중보자로서서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기도하고 용서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그 놋뱀을 본 자들은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놋뱀을 매달아서 보는 자들을 살게 하신 일은 이들이 행한 일은 믿음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기에 믿음으로다시 보기만 한다면 그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이후에 요한복음 3장14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기록하시듯이, 죄 지은 자들을위해서 예수님께서 달려 돌아가시는 사건을 예표로 보여 준 것입니다. 놋 뱀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은혜가운데 용서하시고 살리시는 사건이면서, 누구든지 어떠한 죄 가운데 있더라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진실로믿고 순종하고 따른다면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인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왜 이들은 동일한 문제, 불평을 계속하는가? 같은 문제에 부딪히는 이유가 처음에 그들이 왜출애굽을 행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위적 삶에 대해서 이해하고 동의하고 실행하는 것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종의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린다고만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으로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삶의 법칙을 제공하시고 자유민으로 은혜로 주어진 삶을 이뤄가라고 했는데, 이 부분을 자꾸 잊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주려고 하는 것은 먹고사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우선 종이 아닌 자유민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가자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나라를 이루자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주려고 하는 것은 자유민으로 살아가는, 스스로 생각하고 삶을 개척하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서로가 평안과 안녕을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지금 주장하는 의식주의 편안함과 종으로 누릴 수 있는 그 정도의 삶의 가치를다 버리고도 더 뛰어난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민이 되기 위한 과정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여전히 종으로 살아가는 삶이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불만은 지금 한 순간의 불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누적된 감정이 쌓여서 나온 불만이었습니다. 그 근원을 없애지 않으면, 본질적으로 왜 애굽에서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으면 그 길을 가는 동안에 계속된 불평과 불만으로 가야할 목적지로 가지 못할 것입니다. 자유의 여행이 불만과 불만족을 쏟아내는 여행으로끝나는 것입니다.
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까지 가야하는 여정은 믿음과 순종의 여행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자유자로 만드시고 주어진 환경을 계발하며 변화시켜서 하나님이 주신 환경을 통해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어 가기위한 훈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어느 곳에서나 자족할 줄 아는 삶의 이유를 명확이 알 때에이 시험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 암송: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수기 21:9)
· 기도: (1) 종이 아닌 자유민으로 불평이 아닌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2) 죄의 종노릇 하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의인된 자들로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중보하는자로 살아가기를 위해서 (3) 믿지 않는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기 위해서 (4) 주일학교와 선생님들, 구역과 구역장들과, 교회 제직들을 위해서 (5) 주일 예배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예배 되기를위해서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