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2023 화요일
· 본문: 디모데후서 3:1–9 (마지막 때에 경계해야 하는 것들: 삶의 근원을 벗어난 자의 모습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 때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5절의 말씀인 “네가 돌아서라”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 일이 디모데에게는 현재적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진리의 말씀 즉,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이 현재에서 종말에 이뤄질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미 전파되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때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뤄지고 있는 지금이며, 진리가 전해지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되 이 시점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마지막 때에 발생하고 신자들이 경계해야하는 일들에 대해서 디모데에게 미리 경고하고 있습니다.
(1) 복음이 증거되고 들려졌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반응하지 않는 마지막 때의 특징은 먼저, 자기 중심적이란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처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난 때로부터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인류가 가지는 특징입니다.
(2) 자기를 사랑하는 인류의 특징은 자기의 삶의 행복을 만족시켜줄 하나님을 대신할 조건을 찾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되는 돈을 사랑하고, 자기만의 선과 악에 따라서 살아가기에 교만하며, 다른사람들을 존중함 없이 비방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생명의 근거를 잃어버린 자에게는 삶의 중요한 근거를 마련해 주는 부모 또한 공경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창조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 육의 근원되는 부모님 조차도 공경하지 않고 존중함이 없는 이에게 삶에 대한 감사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삶 자체는 또한거룩함이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경외감이 없기에 그의 삶은 하나님의 거룩함 같은 것을 그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3-4) 계속해서, 창조의 근원되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육신의 아버지에게 감사하지 않는 인류가 (혈연으로맺어진 사람에게 조차도 사랑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과 인류애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으로 자신만이 살아남기 위해서 정을 통함이 없고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울 뿐아니라, 선한 것을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배신과 조급하고 자만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류의 타락으로 (하나님을 멀리함으로) 생긴 결과일 것입니다.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벗어난 자에게, 하나님을 통하여 다른 대상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 속에 우리를 둔 이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 속에서 선함과 아름다움과 진리를 가지고 서로를 존중한다고 하는 마음이 필요 없는 일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이들에게 공존의 관계는 없습니다. 그에게는 다경쟁이며, 그들이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위협하는 제거의 대상이며,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만존재할 뿐입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이익을 위한 협력하든, 아니면 이용의 대상이든 아니면 싸워나가야 하는 경쟁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없는 세계에 사는 이들에게는 신뢰나 사랑의 관계가 아닌 배신하고 자기를 높이며, 현재의 쾌락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4). 창조주인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옳고 그름의 절대적 기준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그들은 창조주를 없앰으로 종말의 가치도 없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있을 자기의 삶에 대한 심판을 의식하지 않게 됩니다. 당연히 현재적 가치에서 자기를 즐겁게 하는 쾌락만이 남겨지고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단지 자기의 쾌락을 저해하는 요소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그 걸림을 주는 요소들은 하나도 남겨두지 않으려 노력할 뿐입니다.
(5) 그렇기 때문에, 혹시라도 이들이 자기의 삶을 경건하게 드리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그것은 정말 외적인 모양일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오는 것이 아닐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서 받고 싶은 존중과 자기 유익을 위한 겉모습 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한다고 하지만, 현재의 삶에서는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자라면, 바로 그가 실천적인 무신론자Practical Atheist이면서, 가장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자입니다. 이들이 간혹 보여주는 모습이 경건한 모습이 있을 수 있으나, 그 본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함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제스쳐 일뿐이다. 경건의 모양 속에 경건의 능력되시는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6-9) 바울은 이런 삶의 모습을 가진 자들로부터 돌아서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실천적 무신론자와 같은자들과 신앙의 교류를 갖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 중에는 자신만 악한 길로 (하나님 없는길로) 접어든 것이 아니라 주변의 여인까지도 악한 길에 비본질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막는것입니다. 그 여인 또한 죄를 짓고 여러가지 욕심에 따라서 자기 만족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살아가는 삶 중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자기 만족, 자기 한풀이를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삶의 모습에서 십자가를 통해 나의 육의 욕망을 죽여야 진정한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배하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삶은 순수한 마음, 즉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복음의 진리를 따라서 행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즉 복음이 말하는 하나님의 생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누리며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른 그런 사람의 모습을 구약에서 모세를 대적하여서 심판에 이르게 된 “얀네와얌브레”로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구약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유대 전통에서는 모세를 대적했던 바로를 위해 일했던 애굽의 마술가들로 이해됩니다. 즉 이들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일을 방해하는 것처럼, 현재 바울과 디모데의 복음의 진리를 방해하는 하고 있는 자들이 행하는 것이면서, 이들의삶은 결국 그 구원의 길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즉 진리를 대적하는 삶 자체가 어리석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말세 즉,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에 따라 살지 않는 자의 삶이 곧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안 계시고, 구원의 주 되신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자신이 주인이 된 삶입니다. 그런 삶에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말씀하시는 사랑과 공의를 기반으로하는 공동체의 삶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의명예와 기쁨 쾌락을 추구해 나갈 뿐입니다. 이런 자들의 삶은 정이 없고 협력이 없이 오직 경쟁과 싸움만이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가치를 모르는 자들의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하는 것은하나님을 믿는다 말만하고 진실로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여기며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교회 안의 실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이들의 삶을 경계해야 하고 그들의 생각과 동조해서는안됩니다. 오히려 복음의 진리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뤄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 암송: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4-5)
· 기도: (1) 진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며,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며 하나님의 진리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위해서, (2) 교회의 목표인 열매 맺는 교회 되길 위해서, 또한 교회 안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자격을가진 자들이 많이 세워지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사명, 제자 삼는 교회로 세워질 수있도록 (3) 10/20-21에 있는 청대학부 retreat을 위해서 (4) 한 주간 가운데 온전히 주님과 함께하며, 주님 만을 예배하고 경배하며 살아가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