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빌립보서 3:1-11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의)
(1-6) 바울은 자신이 얻은 의의 근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고백합니다.바울은 그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육체를 통해서 되어진 일들을 신봉했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율법 주의자로, 할례를 강조하며 자신의 이스라엘의 족보, 즉 언약 백성으로의 계보를 중요한 것으로 믿고 따랐던 사람입니다 (4-6). 그리고 자신의 열심으로 유대교를 따르며 반대하는 자를 핍박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뒤에 철저히 깨짐을 경험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영혼의 자유함을 누리고 참 생명의 가치, 영생을 알게 되고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은 그런 육을 통한 의의 추구로 다다를 수 없음을 알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가 누린 기쁨은 철저히 이것과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1절에서 “주안에서 기뻐하라”라고 고백하는 것은 철저히 이 율법 주의를 따르지 말라고 하는 반대 말입니다. 바울이 거듭 말하듯이 “주 안에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주 안에서 머무는 것과 반대가 되는 것이 “율법을 통하여 얻으려고 하는 의”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주의 가운데 기쁨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주의로 기쁨을 얻을 수 없는 세 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첫째가 율법 주의는 율법을 지키는 자기의 의가 늘 강화됩니다. 자신의 윤리적인 행위가 강조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자기를 높일 뿐입니다. 두번째는 그 율법의 모든 조항을 지킬 수 있 사람이 없습니다. 늘 부족함이 있을 뿐입니다. 세번째는 늘 새로운 법을 생각하고 규율을 고민합니다. 하나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 또 다른 법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그에 관한 또 다른 세부 항목들을 만들고 그것을 공부하고 익히고 또 고민하고 하면서, 생명과 기쁨과 자유는 잊어버리고 율법주의, 법을 위한 법만 남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을 강조하고 율법주의로 살아가는 자가 처한 어려움입니다. 그렇기에 그 안에는 규제와 절제 자기 통제가 있지 자유와 기쁨 생명의 교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이 과거에 그렇게 옳다고 여기고 추앙하며 따랐던 율법주의의 삶을 2절에서 말하듯, “개”들이 행하는 것으로 취급하거나, 악을 행하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그것과 반대되는 삶이 3절에 나온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능력의 근원을 내 자신 혹은 육신이 아닌 하나님께 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을 의지하여 행하는 일에 자신이 드러날 일이 없고, 봉사를 하면 할 수록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며 자신을 낮추게 될 뿐입니다. 어떻게 그 능력의 근원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높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더욱 이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할례파입니다. 할례란 생명을 의미하는 남성의 생식기의 한 부분을 잘라 냄으로 해서 자신의 생명이 죽고 하나님으로 다시 살았다라고 하는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이 의미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이 살아간다는 것을 시인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7-9) 그러므로 바울은 과거에 자신의 자랑이었고 의라고 여겨졌던 모든 것들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얻는데 해가 된 것이라 고백한 것입니다. 유익이라 여겼던 것이 유익이 아닙니다.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에서 장애가 된 것입니다 (7). 율법은 선한 것이나 율법을 통하여 의를 얻으려고 했던 그 일이 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게 된다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할 뿐입니다. 오직 자신의 깊은 죄악을 바라보고, 자신 안에 어떠한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그 절망을 경험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가 화목제목이 되시고 그 피로 우리의 죄가 씻어지고, 하나님의 의의 요구가 그의 온전한 순종으로 이뤄졌음을 믿는 그 믿음으로 우리에게 의가 주어진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하나님게로부터 난 의”입니다.
(10-11) 그러므로 이 의를 경험한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치를 알고 그 십자가의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그 부활과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하고자, 즉 앞서서 부활과 그 권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고난을 거쳐야 하며, 즉 주님의 십자가를 먼저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서만이 우리 죄의 깊이와 그 죄를 용서하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더 나아가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을 살리신 그 능력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구원하시고, 능력을 살리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백성으로 만드신 은혜를 경험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자랑하는 “이신칭의”의 복음입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만 의를 얻는다는 이 신앙 고백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 2024년에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가는 삶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을 알고, 그를 자랑하며, 그를 따라 십자가를 지며,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만 봉사하는 삶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기도: (1) 2024년 동안 복음의 진리 안에서만 행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가운데에만 거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2) 아직 구원을 얻지 못한 부모님과 자녀들, 친지와 친구들이 올 해에는 복음을 듣고 살아가기를 (3) 선교와 전도 봉사와 구제 등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4) 교회와 협력하는 선교사님들 (권종승, 안자현, 심수영)과 후원하는 단체들 (keystone family alliance & Out of the Cold)의 사역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