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2023 화요일
· 본문: 고린도후서 4:7–12 (질그릇에 담긴 보배)
앞서 4장 1-6절의 말씀이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의 태도와 증거하는 것, 즉 예수의 주 되심을 강조하는 것이었다면, 오늘 본문 4:7-12은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위해 견디는 새 언약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7) 바울은, 이 보배, 즉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연약한 그릇에 담겨 있다고 합니다. 바울의 인식 속에서 우리 자신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입니다. 초라한 그릇이고 어떤 특별한 가치도 없고, 사용할 수없을 정도로 쉽게 깨질 수 있는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흙으로 창조된 인간의 원래 가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무가치해 보이는 연약한 육신을 사용하여서 하나님의 귀한 것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포장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포장지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실제 중요한 가치가 있듯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포장지는 화려하게 되어있어도 그 안에 무가치한 것이 들어 있다면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일까요?
(8-9) 그런데 그 보배를 가진 사람, 즉 새 언약의 일군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사방으로 욱여 쌈을 당한다. 즉 온통 사방에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들의 공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시면, 바울은 에베소에서 이미 그런 고통을 당했습니다.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돈 벌이가 사라질 것을 염려해서, 종교적인 문제를 경제적인 문제와 결부시켜서 그리고 정치적인 선동을 통해서 바울을 고립시키고 어려움에 놓이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복음의 진리를 가리기 위해서 거짓된 자들이 힘을 합쳐서 공격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환란 가운데서 서기장의 지혜로운 판단을 통하여 바울을 살리시는 모습을 봅니다 (사도행전 19:35). 이처럼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에게 답답한 일이 있고, 박해, 거꾸러짐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으나,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지 결과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하나 하나의 고난들을 통하여서 오히려, 새 언약의 일군들을 낙심하지 않고 더욱 붙드시고, 그들을 더욱 굳건히 서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8-9).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이 빌립보에서 경험했던 사건을 보십시요. 성령의 음성을 따라 가서 한 빌립보 사역에서, 마귀의 종 노릇하며, 돈벌이에 사용된 한 점치는 여인을 구원해 주었지만, 이 일의 결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에서 끝났으면 슬픈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의 결론은 이것이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감옥을 지키는 간수장을 회개시키시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셨으며 그 집안 전체가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사도 바울의 마게도냐 전도의 초석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의 후원을 통해 바울의 전도를 가능케 하신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낙심되고, 박해 받고 버림 받는, 이 저주 같은 상황이 결국에는영광스러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일의 주관자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0-12) 단지 새 언약의 일군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삶 가운데 항상 예수의 죽음, 그가 지신 십자가를 몸에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 우리의 삶을 통해 그 예수의 생명이 다시 증거되고 살아날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있지만 예수를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살아납니다. 우리의 육이 살아 있으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11). 완전히 죽어야 완전히 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24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육신을 죽이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죽어야만 많은 영의 생명이 맺어지게 됩니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을 위한 십자가의 삶이란 의미입니다 (12).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여서 스스로 지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감사하며, 기꺼이 그 은혜를 알기에 다른 구원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고통과 죽음에 처할 수 있으나 이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역사를 바라보며 새 언약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히브리어로 육체는 “바샤르(בָּשָׂר)”라고 하며, 복된 소식은 같은 어근을 사용하여서 “메(전치사 ~ 부터, 혹은 분사 ~ing)+바세르(מְבַשֵּׂר, 이사야 52:7)”라고 합니다. 즉, 복된 소식은 육신을 통해서 증거된다는 뜻을 포함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그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복된 소식을 증거하셨고, 십자가에 그 육신을 드렸을 때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놀라운 능력과 역사를 우리 연약한 육신에게도 행할 수 있는 기회와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처럼 유약한 인생일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이, 이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보석처럼 빛나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 또한 그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시켜 주신 것입니다. 매 순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생명이 우리의 삶 안에 드러나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는 인생, 내 안에 사망이 역사하고 다른 사람 안에 생명이 역사하는 하나님의 메바샤르(복된 소식)되는, 육신이 복음이 되는 삶 되기를 바랍니다.
· 암송: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0)
· 기도: (1) 우리의 몸 자신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도구 되며, 연약한 육신이지만 이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날 수 있는 순종과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2) 전쟁과 기근과 자연 재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3)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된 복음이 속히 그들에게 들려질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 문을 열어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