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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23 (고후 10:1-6) 우리의 무기, 하나님의 능력

· 본문: 고린도후서 10:1-6 (우리의 무기, 하나님의 능력)

8-9장까지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유대지역에 보내는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면, 10장에서는 다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문제를 변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의 태도와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1)절에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의 태도가 얼마나 온유하며 관용적으로 행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의모습을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했던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중 일부가 반대로 이해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울이 겸손하게 한 행동은 바울 복음에 자신이 없어서 그렇다라고 하고, 바울이 행한 일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10:4)”라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셨던 것처럼 온유한 모습으로 대했던 것입니다. 비록 그들과 같이 있지 못할 때에는 그들의 복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바로 잡기 위해서 엄한 편지 글을 써서 보내기도 했지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는 그들이 복음에 따라 살지 못하는 모습 가운데에서도 인내하면서 십자가의 복음가운데 바로 살 수 있도록 온유한 성품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2-3) 그러나, 바울은 복음에 왜곡하고 복음의 순수성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게 대했음을 보게 됩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문제에서는 물러남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런 엄한 모습으로 이제 복음으로 자라나는 고린도 교회를 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가 자신을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처럼 대우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바울을 대하면 그들을 바울을 방해하는 자들처럼 취급하여서, 영적 전쟁을 하듯 무섭고 엄하게 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4) 바울은 4절에서는 본격적으로 영적 전투의 본질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이 치루는 이 복음을 증거하는 삶 자체가 영적 전투였습니다. 그가 이 싸움을 행할 때 자신의 무기는 육신이 아니라, 세상의 견고한 진들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강력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힘으로 각 세상의 이론과 가치관, 유대 율법주의와 같은 이론들을 무너뜨리고, 복음 가운데 들어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자유의 가치를 지켰습니다.

바울이 영적인 전투를 치뤄야 했던 대상들은 다양했습니다. 먼저는,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며, 속이며 거짓 가르침을 선동하는 자들 (고후 11:3-4; 갈 1:6-9)과 이와 연관해서 자신의 사도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복음을 왜곡할 뿐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서 율법주의적인 삶의 태도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 (할례와 정결 예식, 날을 정하여 지키는 것 등, 갈 2:4-5; 5:2-4), 그리고 셋째, 이미 성령께서 하나된 교회를 여러 분열의 요소를 제공하는 사람들(고전 1장, 로마서 16:17-18), 넷째, 이뿐 아니라 탐욕과 물질을 착취하기 위해서 자신을 마치 하나님의 선량한 일군처럼 보이면서 살아가는 자 (고후 2:17; 딤전 6:3-5)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바울은 싸워야 했으며 그들로부터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야 했습니다.

(5-6)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과 영적 전투를 치뤄야 하는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루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1-18에서는 이 영적 전투를 위해서 로마 병정처럼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온몸을 전신갑주를 둘러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진리와 의로움에 기초하여 평안과 믿음으로 구원에 대한 고함을 가지고 성령을 통한 깨달음과 말씀으로 살아가고 기도와 간구로 무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곳에서는 그 모든 것의 핵심인 “하나님의 능력, 권능”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8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증거했습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부활을 이끈 힘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어떤 세상의 이론이나 가치관들로는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나 철학 또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배우는 것인데, 그것들인 참된 생명과 삶의 방식을 제공해 주지는 못하고 오직 삶에 대한 질문만 던질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자체로 세상이 추구하는 참된 생명의 모든 것입니다. 그것은 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이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0).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드러난 죄사함과 구원과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세상의 어떤 이론도 무너뜨리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다 무너뜨릴 뿐 아니라, 하나님 보다 더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고 난 뒤에 인간은 하나님의 선과 악을 따르는 것이 아닌 인간의 선과 악을 따르며, 스스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독립을 외쳤으나, 그 독립은 처음 출발부터 참된 하나님의 선함과 진리와 생명에서 벗어난 출발이었기에, 그 끝은 죽음으로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시며 하나님의 뜻이 자유이며,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 자체가 선이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하나님과 떠난 것이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고, 교만이며, 죄이며, 죽음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구원을 위해, 사람은 스스로 높아지며 교만해진 것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능력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 생명의 능력, 참 자유의 능력이 들어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 속에 고린도의 성도들처럼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이들이 완전한 순종으로 무릎 꿇을 때까지 기다리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자신을 붙들며 살아가는 육신을 따라 살아가며 자랑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위해서 심판을 준비중이십니다.

· 생각하는 점: 우리는 바울의 복음을 증거할 때의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변질시키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엄격하게 대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온유와 자비한 모습으로 대하며 그들이 복음가운데 자라도록 돕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 들어 있는 이 사랑의 자비로움과 공의의 엄중함을 조화롭게 사용하면서 서로를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세워가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전투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우리 안에서 스스로 높이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고 하는 내 자신과의 싸움 뿐 아니라, 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이론과 가치관과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 가운데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미련한 것으로 전도의 아름다움을 삼으셨듯이,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에서 말하듯이, 오히려 사람들이 다 피하는 십자가의 고난의 삶이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 암송: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고린도후서 10:4)

· 기도: (1)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전투 가운데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겨 나갈 수 있기를 위해서, (2) 서로를 대할 때 온유와 자비함으로 대하며, 진리 가운데 사랑의 자비로움과 공의의 엄중함으로 대할 수 있기를 (3) 여름방학 기간동안 한국을 방문하시거나 여행을 떠나는 성도님, 타주로 이동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어느 곳에서든지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그들의 삶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되기를 위해서, (4) 주일 예배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예배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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