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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24 (행7:23-34) 지도자로 세워지는 과정

본문: 사도행전 7:23-34 “지도자로 세워지는 과정”

본문의 이슈는 어떻게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23절에서 모세는 40이되어서 자신의 백성들을 돌 볼 생각이 났다라고 합니다. 40살이 되어서, “돌볼 생각이 났다”라고 했는데, “생각이 났다”라는 표현을 영어 번역본에서는 “decided 결심했다” 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즉, “결심하였다”는 이 마음의 의지적 표현으로, 이제까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거리감을 느끼게 해주는 단어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이제 때가 되어서, 이 일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즉, 특권의식을 가지고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그 어려움을 해결해 줄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권의식, 차별성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갔으니 사람들에게 그런 거리감이 느껴진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들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입니다.그 백성의 일부로서 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모세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런 결심을 하고 백성에게 다가 갖고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애굽 병사를 죽이게 되는 사건이 일어 납니다. 그리고 다음날 두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다툼이 일어 난 것을 보고, 모세는 자신을 중제자로서 같은 백성으로 서로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고, 모세를 군림하는 자로 받아들인 것인가? 27절에서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지도자로 통치자로 만들었느냐?” 라는 그 질문에는, 자신들의 일부로서 같은 동족이라는 생각이 묻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세의 행위를 보고, 그를 자신들의 일부로서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오히려 동족을 지배하는 지배자라는 생각 만을 갖게 한 것입니다. 앞서서 모세는 폭력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중 한 명을 도와서 그 어려움에서 구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선의를 가지고 한 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폭력으로만 느껴지고, 지금까지 자신들을 폭압하고 군림하면서 다스렸던 애굽 백성과 같은 것으로 모세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28절의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어제 네가 이집트인을 죽인 것처럼 나를 죽일 생각이냐?” 모세는 이들에게 지도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자신들을 억압하고 무력으로 다스렸던 애굽의 한 독재자로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버림받게 된 이 순간, 그가 할 수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도망간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는40년의 시간을 이방인으로 미디안에서 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애굽의 궁정에서 살아왔던 모세의인생이 한 순간 미디안 광야에서 이방인으로 배척받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한 익명의 사람으로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이방인으로 아무 존재 가치를 가지지 못하고 노예로의 삶을살아가듯이, 모세가 40년의 세월을 이방인으로 광야 백성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모세가 이방인으로 긴 세월을 보내고 난 뒤에,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 오신 것입니다. 즉 특권의식도, 군림하고 다스리는 마음도 다 사라지고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철저히 깨닫고 난 뒤에 하나님이 그를 찾으신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부여하시고 그를 자신의 일을 대리할 사람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를 생각할 때,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이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에게 언약을 회복케 하신 것만 눈에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부분도 중요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존재가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의 가치가 얼마나소중한 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부름 받고 인정받는 것은, 그가 이스라엘과 가지고 있었던 그차이를 없앤 것입니다. 처음에 젊은 40세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갈 때에는 그는 이스라엘이겪었던 고난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들이지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디안 광야의 40년의 세월을 겪은 모세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의 나그네로서 얼마나 큰 고통과 고난을 겪어 왔는지를 몸으로 경험했고, 그들과 같은 아픔을 마음에 몸에 새긴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그 고난과 삶에 대해서 싸워서 이긴 그 흔적이 그를 이스라엘 사람으로 받아들여진 것이고,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0년의 광야 세월을 끝내게 하시고 그를 부르신 것도, 이 고난의 시간이 지나서 그가 이제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의 지식과가지고 있는 배경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학문적, 관계적 배경- 그의 정치력을 통해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예전에 고려시대에 요나라 즉 거란 족으로부터 압록강 동쪽인, 강동 6주를탈취했던, 서희의 외교술처럼, 모세가 그런 정치력으로 외교력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아닌, 철저히 아무 것도 아닌 이방인으로서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에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이름 만을 알려 주시면서, 언약의 하나님으로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존재의 하나님의 이름만을 의지케 하심으로 그 구원의 위대한 일들을 이뤄가게 하신 것입니다.

· 중요한 점: 우리에게 사명이 주어지고, 행해야 할 일 이 주어졌습니다. 사명만으로 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먼저 자신을 내려 놓아져야 합니다. 모세가 자신의 신을 벗듯이 자신이 온전히 종 된 자임을 고백하듯이 먼저 하나님께무릎 꿇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내가 가서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같이 고난을 겪고,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픔에 동참함으로 우리가 하나 되었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즉 희생함으로 서로를 세우고 고난에 동참함으로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아픔에 함께 동참하고 그 고난의 길을 걸은 사람 사람이 모여서나라는 존재에서 우리라는 존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 기도: (1)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희생과 겸손으로 잘 감당할 수 있기를 (2) 주변에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돌아보며 함께 잘 이겨 나갈 수 있는 교회 공동체 되기를 (3) 여행 중에 있는 교우들과 불신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와 담대함을 허락해 주시기를 (4)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성전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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