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 수요일
· 본문: 12:17-13:10 (왜곡된 세상 권력에 대한 성도의 삶)
(12:17-13:2) 한 짐승이 바다에서 나옵니다. 이 짐승은 열 왕관을 쓴 열 개의 뿔과 온갖 신성 모독하는 글을 쓴 일곱개의 머리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모양은 표범의 형태에, 곰의 발을 가지고, 입은 사자의 입인 기괴한 모습의 동물이며, 그 짐승에게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부여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바다에서 무엇인가 나오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혼란 시키는, 폭력적인 정권들에서 무엇인가 형성 됨을 의미합니다. 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악을 끼치는 존재이며, 세상에 혼돈을 야기시키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짐승은 용, 즉 사탄으로부터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부여 받았습니다. 묵시서인 다니엘 7장을 참고한다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다니엘 7:3-7에서 표현된 4 가지 짐승 중, 사람을 떨게 만드는 포효를 하는 사자, 느리지만 모든 것을 파괴할 정도의 힘을 가진 곰, 두려울 정도의 잔인함을 지닌 표범의 형상을 하나로 모아 놓은 모습 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 기괴한 짐승은 하나님과 믿는 자들을 파괴하고 괴롭히는 어떤 실체입니다. 거기에 7개인 머리는, 7이란 완전수가 의미하듯이 이 짐승은 믿는 교회의 궁극적인 대적자를 상징합니다.
다니엘서의 네 개의 짐승은 장차 온 세계를 다스릴 나라 (바빌론, 메데-바사, 그리스, 로마)를 의미하는데, 요한계시록에서도 같은 의미로 짐승이 가진 뿔과 왕관을 의미하는 것은 온갖 세상 정부가 가진 권세를 부여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서에서는 나뉘어 있는 4 나라라면, 여기에서는 그 모든 세력이 하나로 뭉친 나라로, 이 글의 저자인 요한 시대의 로마 제국을 의미합니다.
(13:3-10)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머리 하나가 다쳤고 그 머리가 치유되는 모습에 온 땅의 사람들이 따릅니다. 짐승의 머리는 당시에는 로마의 한 황제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 이후 세대 사람들에게는 세계의 절대 권력을 가진자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용이 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사람들이 예배하고 경배합니다. 이 짐승을 설명하기를 신성모독을 행하는 자며, 이 땅에서 마지막 종말의 3년 반이란 시간 동안 땅의 권세를 물려 받아서,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이며, 성도들을 핍박하고 온 세상의 권세를 받은 자입니다 (13:5-7).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은 자를 제외하고는 다 그 짐승을 경배 할 것이며, 오직 신자들만 세상 권세에 맞서서 싸우고, 순교하며 성도들의 인내와 신앙을지켜 나갈 것입니다 (13:8-10)
사탄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탐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가진 그 분의 전능하심과 그 권능입니다. 그리고 그 권능을 자신의 충복되는 짐승에게 세상의 정부 권력을 부여한 것입니다. 정확히는 이미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국가의 권력을 왜곡하여서 사용하도록 사람들을 미혹한 것입니다 (참고: 로마서 13:1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하나님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합당한 법률과 질서를 허락하셨으나, 사탄은 그 질서와 법을 악하게 사용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여 사람들을 폭압하고 평화를 해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놓여 있습니다. “개인의 복수가 아닌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 우리는그 잘못된 질서 위에 세워진 폭력적 권세, 권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이 가진 중요한 이슈들 중 하나입니다. 세상의 권력이 부패 했을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리적으로는 로마서 13장에서 말씀하시듯, 우선적으로 그 권세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 권세가 왜곡되고 사탄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인정해야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때로는 사로잡히기도 하고 포로도 되며, 의와 진리를 위해서 싸워서 순교를 당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진리로 행할 방법을 찾는 수고와 인내와 하나님이 그 곳에 개입해 주실 것이란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세상에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폭력이 시행되면 신자든 불신자든 가리지 않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 폭력에 희생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안에서는, 때로는 세계 2차 대전에 히틀러의 폭압적인 모습을 본 기독교인인 본회퍼처럼 그를 암살하기 위한 방법을 간구하는 그리스도인도 있고, 또 다른 형태로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서 평화와 비폭력주의를 외치며 싸워 나갔던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있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 전혀 다른 방법을 택했지만 둘 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최대한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과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되기를 위해서 힘쓰며, 매 순간 하나님께 옳은 길을 찾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회의 악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제도적, 조직적, 정치적 폭력에 대해서 말씀의 진리와 하나님의 공의인, 모든 의를정의 가운데 사랑하며, 수용하며 서로 상생 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십자가를 지는 삶의 방식을 택하는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함부로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원하시기에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세워 두신 그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그 가운데 사탄이 개입한 그 악에 모습을 제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기도, 예수 그리스도 사랑으로 지신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해야 하며, 악의 치밀함을 밝혀내야 하는 굉장한 지혜와 면밀함, 거짓을 드러내야 하고 악을 대항하여 싸울 용기, 하나님의 사랑으로 포용해야 하는 인내와 포용력,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의와 공의의 표현 방식,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함께 싸워 나가기 위한 연대 등 쉽지 않은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부당한 권력 아래 고통 받는 중에도 기억할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아래 놓여있고, 이 사건보다 더 크신 분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며,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며 사람들의 자유와 평화를 없에는 것에 대항하는 신자들의 삶의 모습을 요한은 간단하게 13:10에 “사로잡히는 것” “칼에 죽을 것” 그리고 “성도들의인내와 믿음”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암송: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0)
· 기도: (1) 사탄의 폭력 속에 놓인 이 세상 질서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이들을 위한 바른 권위로 세워질수 있도록, (2)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어려움에 처할 때, 저희들이 온전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 그리고 온전한 평화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삶에 참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3) 수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시간되며, 우리 심령이 은혜로 충만해 지기를 위해서, (4) 전쟁과 기근과 자연 재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5)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랑하는 가족들을위해서,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된 복음이 속히 그들에게 들려 질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 문을 열어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