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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23 (고후 12:11-21) 영적 지도자의 모습과 두려움

06/24/2023 토요일

· 본문: 고린도후서 12:11-21 (영적 지도자의 모습과 두려움)

본문은 그리스도 공동체에서 사도 혹은 진정한 영적 지도자가 지녀야 하는 자질과 영적 부모로서 교회에 대한 책임, 그리고 영적인 성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말해 주고 있습니다.

(11-13) 바울은 12:1-10에서 자신이 경험한 환상과 계시를 자랑했던 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다시 한번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외적으로 경험한 영적 체험보다도 연약함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약함을 자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이렇게 약함을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사도로서, 교회 지도라로서의 표적이나 기사 혹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음을 강조합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회가 생각하는 대단한 사도들에 비교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자신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습니다. 실지로 사도행전 14장에 따르면, 바울이 선교를 위해 아시아를 다니면서 루스드라 지역에서는 날 때부터 앉은 뱅이 된 자를 고쳤다든지, 16 장에서는 빌립보 지역에서 점치는 귀신을 여종에게서 쫓아내는 등 그에게는 가시적인 능력과 표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 후에 19장에서도 에베소 지역에 많은 이적이 있어서 바울의 몸에 있던 손수건을 병든 사람에게 얹어만 놓아도 병이 낳고 귀신들린 자들이 고침을 받은 것으로 보아서,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에도 이와 비슷한 다양한 이적들을 행했음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사도로서의 다른 표시는 고린도 교회에게 어떤 경제적인 피해나 부담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회를 위해서 마게도냐 교회가 헌금을 하면서 고린도 교회가 지어야 하는 부담을 대신 지었습니다 (11:19; 12:13). 사도는 그 일 하는 곳에서 사례비를 받아서 복음을 증거하며 삶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바울은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고 고린도 성도들에게 복음을 값 없이 전했습니다.

(14-18) 또한 바울은 16-18절에서 기록하듯이 사람들 모르게 사례비를 받은 것 아니냐라는 오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에 세 번째로 전도하기 위해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어떤 경제적 도움을 얻지 않기로 이미 계획했던 것입니다. 어떠한 폐도 그들에게 끼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영적인 아버지로서 아직 신앙적으로 미성숙한 고린도 교회에게 어떤 짐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자신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를 영적인 아버지와 자녀로서 설명하면서 자신이 아버지로서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재물을 비롯한 자신까지 내어 줌으로 사랑의 헌신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의 복음을 위한 스스로의 희생과 헌신의 삶이 있었음에도, 그를 대적하는 자들은 자신들을 속여 뒤에서 이득을 취했을 것이다라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16). 그래서 바울은 어쩔 수 없이 자신 뿐 아니라, 사역에 동참했던 했던 어떤 누구도 너희에게 힘들게 하지 않았음을, 디도의 예까지 들어가며 변호를 해야 했습니다. (참답답하다… 이렇게까지 변명을 해야 하는가…).

이 변호 안에는, 같은 복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같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형제로서, 동일한성령으로 행하고 동일한 보조”로 행하는 것 (17-18). 즉 복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디에 속하건 어떤 동기로 하건 자신과 같은 삶의 태도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복음을 증거 한다고 하지만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와 다른 삶의 모습이 있다면 그들의 삶을 의심해 봐야 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19-21) 바울은 이렇게 11장에서 시작된 자랑의 목록이 12:10에서 끝났지만 이 일이 자신을 위한 변명이 아니라 오히려 고린도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제까지 바울이 자신을 변호한 것이 사실이지만 본직적으로는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연약함의 모습이 오히려 고린도 교회가 깨달아야 하는 연약함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쓴 이유가 고린도 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아닌 외적인 것들을 추구하며 생겼던 분열로 인한 “다툼,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비방, 수군거림, 거만함 혼란… 교만함,” (고린도전서1-3장)과 “더러움, 음란함, 호색함” 등 온갖 비도덕적인 악행들에 대해서 회개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평가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가 두려웠습니다. 자신의 교만함으로 인해 하나님께받는 처벌이 두려웠고, 지금 자신의 과거 행태처럼 하나님 없이 교만한 채로 살아가는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까 두려워 하면서 그들에게 이 경고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세 번째 방문에서는 고린도 교회 안에 어지러운 질서들이 바로 잡히고, 서로 복음 안에서 화합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기를 바라며 교만함이 아닌 거룩한 성도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이 편지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바울은 그리스도 공동체에서 사도 혹은 진정한 영적 지도자가 지녀야 하는 자질과 영적 부모로서 교회에 대한 책임, 그리고 영적인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두려워 한다고 네 번이나 강조하며 우리의 삶의 판단, 신앙의 판단을 하나님께 두고 코람데오의 삶으로 살아가야 할 것을 경고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슐래터( Schlatter)는 고린도 교인들의 자기 중심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잘못된 모습을 잘 지적했습니다. “사람을 더 높은 차원의 삶으로 들어 갈 수 있게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이해하는 자기 중심적인 믿음의 개념,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인식하지 못한 채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만 결합되고자 하는 열망, 자기 자신 만을 위대하게 높이기 위한 성령 충만함, 이 모든것은 가장 깊은 의미에서 비(非)바울적이고 비사도적 이다”라고 고발했던 것입니다 (A. Schlatter, F.D. Brunner, A theology of the Holy Spirit, 317). 우리는 바울이 보여 주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삶과 낮아지는 삶 희생과 헌신의 삶으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십자가에 결합하려는 열망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성령 충만함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 암송: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 12:2—21)

· 기도: (1)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바울의 고백의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2) 자기 중심적인 믿음이 아닌 교회와 그리스도와 희생과 헌신, 하나님 중심의 열망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3) 여름방학 기간동안 한국을 방문하시거나 여행을 떠나는 성도님, 타주로 이동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어느 곳에서든지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그들의 삶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되기를 위해서, (4) 주일 예배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예배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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