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2023 화요일
· 본문: 사무엘하 17:1-14 (악인의 계획을 무너뜨리시는 하나님)
15장에서 압살롬의 반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이 밧세바를 범한 죄와 의로운 헷 사람 우리야를 죽인 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하여 이미 용서하셨지만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 주신 사건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예루살렘에 도망쳐 나왔습니다. 예루살렘을빠져 나오면서 다윗은 그곳에 자신의 후궁 열명, 잇대 그리고 사독과 하나님의 언약궤를 놓고 나옵니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그 궤와 그 계신데를 보이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책략가였던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할 후새를 남겨 두며 후일을 도모합니다.
이런 도망의 과정 중에 다윗의 위세는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사울의 아들이었던 므비보셋이 이 과정을 틈타 아버지 사울의 나라를 회복하려는 기회를 엿보고 (사무엘하 16:1-4), 사울의 친족 중 한명인 시므이의 저주를 들어야했습니다 (16:5-8). 다윗이 저주와 모욕을 당하고 있다면 아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아히도벨과 함께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이 남겨놓은 후새의 환영인사를 받고,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략에 따라서 남겨진 다윗의 후궁과 동침하며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다윗의 왕위가 찬탈된 상황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한 편으로는 그를 회복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하고 계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후새를 통해서 하신 일들입니다.
(1-5) 이제까지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왔습니다. 다윗과 압살롬의 전투에서 아히도벨이란 인물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아히도벨은 다윗이 살해했던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의 할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아히도벨은 원래 다윗을 위해서 좋은 계략을 베풀었고 그것이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여겨질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사무엘하 16:23). 그러나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한 그 상황에 대해서 아히도벨은 다윗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정확이 기술하지는 않지만, 이 일로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의 편을 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을 부추겨서 다윗을 빠르게 제거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쫓겨난 지금 아히도벨은 다윗을 쫓아가 기습하여 다윗 왕을 죽인다면 모든 백성이 압살롬의 편이 될 것이라고 계책을 내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에는 압살롬과 장로들이 이 계책이 옳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압살롬이 후새의 의견을 듣자고 한 것입니다.
(6-14) 아히도벨과 후새의 의견은 정반대였습니다. 먼저, 대상에 대한 인식 차이 입니다. 아히도벨은 추격하는 대상인 다윗의 “곤하고 힘이 빠진” 상태로 압살롬이 이해하게 하였습니다 (2). 그러나 후새는 다윗의 군대를 강한 군대로 인식하게 하며 전투에 경험이 많은 용사가 많은 군대로 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나이 들었지만 여전히 전투에 대한 감각이 뛰어 난 사람으로 백성에 있지 않고 굴에 있어 공격해 오는 적을 무너뜨릴수 있는 존재로 부각을 시킨 것입니다. 다윗과 그 군대가 용사라는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 것입니다 (8-10). 그리고 이 한 번의 공격 실패가 압살롬 군대의 패배로 인식되어서 백성의 사기를 꺽을 수 있다라는 논리를펼친 것입니다. 이런 시각을 심어 줌으로해서, 두 번째로, 공격 하는 시간의 문제에 있어서, 아히도벨은 도망가는 적을 지금 공격하기 위해서 빠르고 명확한 공격 대상을 정한 상태로 추격을 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후새는 아히도벨의 계략이 좋지 않다하며, 다윗의 군대가 전투에 경험이 많은 용사가 많고 전략이 까다롭게 사용할 수 있기에, 수 많은 사람을 모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투를 하게 만든 것입니다. 셋 째, 규모와 접근 방법에도 차이를 두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소수의 정예로 다윗만을 타겟으로 했다면, 후새는 단에서 브엘세바, 즉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을 모아서 압살롬이 이끌고 나가서 다윗 뿐 아니라 그와 함께 한 모든 이들을 공격하자고 제안한것입니다. 넷 째는 리스크와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아히도벨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빠른 승리의 기회가있을 때 취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후새는 그 위험성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후새가 노린 것은 압살롬의 과시와 허영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다 모으고 다윗 왕의 군대를 무너뜨리는 것에 앞장 선다면 그가 이스라엘의 용자로 왕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함으로 공격의 속도를 늦추게 한 것입니다. 후새는 압살롬의 심리를반대로 이용하여 다윗이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도록 조언을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압살롬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후새의 계략이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고 여기고 공격을 늦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되어진 것에 대해서 14절에 이야기하듯이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하사 아히도벨의 계략을 실행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 일의 결과로 아히도벨은 17:23에 나오는 것처럼 자기의 계략이 실패함이 곧 압살롬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 스스로 목매어 죽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 생각하는 점: 하나님이 다윗의 삶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자신을 따랐지만자신의 잘못으로 등을 돌린 아히도벨의 계략에서 하나님이 그를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후새를 그 곳에 있게 하시고 그의 말이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더욱 의미있게 들리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편 3편은 다윗이 압살롬으로 부터 도망 다니면서 느낀 것을 기록한 시입니다. 이곳에서 다윗은 여호와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화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시편 3:3). “여호와여…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시편 3:7-9). 비록 다윗은 자신의 삶의 처지가 깊은 절망과 위험에 있다고 할지라도 여호와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놓고 나오며 자신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기대한 것처럼 여호와를 신뢰했습니다. 이것이 후새를 통해서 압살롬과 아히도벨을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다윗처럼 어느 상황에서건 여호와의 선하심을 의지하고 그의 구원을 갈망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구원이시며, 방패이시며, 영광이시며, 우리를 높이시는 그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신자되시길 바랍니다.
· 암송: “여호화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시편 3:3)
· 기도: (1) 어느 상황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손이 인도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하시고 있음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기를 (2) 열매 맺는 교회 되길 위해서, 또한 교회 안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자격을가진 자들이 많이 세워지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사명, 제자 삼는 교회로 세워질 수 있도록 (3) 가을 학기동안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건강을 허락하셔서 잘 준비되어 더욱더 큰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4) 복음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서 (5) 자연 재해 (아프리카의 가뭄, 리비아 홍수, 모로코 지진, 하와이 캐나다 산불 등)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