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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2/23 (렘 4:1-31)

4/22 토요일.
· 본문: 예레미야 4:1-31
(1-4)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개에 대해서 구체적 방법을 언급하십니다. (1) 이방신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2) 그리고 진실과 정의 공의로 삶을 살아가라. (3)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 (언약을 상기하며,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몸으로 각인시키는 행위다).

(5-10) 예레미야는 유다 민족에게 재난이 임할 줄을 알고 크게 외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를 슬프게 한 것은 바빌론의 침입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왜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의 “평안하다”라는 말이 사실인 것처럼 지도자들부터 아래 백성들 모두를 속이게 놔두셨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11-18) 유다에게 심판이 다가옵니다. 바벨론 군대가 내려오는 모습이 회오리 바람과 같이 날쌔고 강하게 표현됩니다. 분명히 이 재앙은 유다의 악한 삶과 행위로 인해 불어 닥친 정해진 사건입니다.

(19-22) 이미 바빌론이 유다를 침공에 대해 유다 백성들의 지각 없음과 미련한 모습, 그리고 악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에는 무지한 저들의 모습에 예레미야의 탄식이 더해 갑니다.

(23-31) 예레미야는 이 불신과 배신으로 인한 심판의 결과를 그려보게 됩니다. 온 천지가 여호와의 진노 앞에 황무지가 되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완전히 진멸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예정되어 있어서 바빌론이 쳐들어 올 때 누구도 도망갈 수 없고, 죽음을 피하려고 화장하며 그들을 바벨론 병사들을 유혹한다고 하더라고 멸시를 당하고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4장에서는 3장에서 보았던 그 위대한 환상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황폐화 된 유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결정이 되어 있는 절체 절명의 상황가운데, 선지자의 고통과 탄식의 소리,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다.” 라는 긴 장탄식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배역한 이스라엘과 유다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며, 그 모습을 4:11-18에서 묘사하듯, 회오리 바람이 몰아쳐 오듯 바벨론 병사들이 쳐들어와 4:23-31에서 보여주듯 모든 것을 황폐화 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 생각하는 점: 이 모습에서 진정한 불행은 이미 정해진 심판이며 바빌론의 침공은 기정사실화 되었는데, 아무도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유다의 죄악이 큰 지, 9-10절을 보시면, 선지자도 모르고 있었고, 왕과 지도자 뿐 아니라 제사장들도 전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었음을 보게 됩니다. 유대 땅이 진멸되고 고통 가운데 황폐화되는 것도 굉장히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더욱 더 심각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말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는 말을 하고 있는 선지자들에게도, 하나님이 거짓을 말하도록 시켰으니…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전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의 첫 걸음이 진리를 말해야하는 자들이 진리를 말하지 못함 입니다. 하나님은 되어질 일에 대해서 먼저, 자신의 사람인 선지자들에게 보여주시고 경고를 통해서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구해 주신 분이셨습니다 (아모스 3:7). 그러나 지금 유대 민족에게는 진리를 선포할 참된 선지자가 없이, 임박한 환난 앞에서 거짓 “평화”를 외치는 거짓 선지자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나라의 불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례미야 선지자를 통하여서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는 방법에 대해서 4:1-4에서 분명하게 제시했습니다.
첫째로, “가증한 것을 버리고, 이방신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라는 경고의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오직 하나님께 만 매달려서 살아가라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가지고 있는 바가 그 의미 입니다. 하나님과 싸워서 살아가는자. 야곱-뒤꿈치를 잡고 나오다에서, 자기 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야샤르(싸우다) + 엘 (하나님)로서 앞으로의 삶 가운데 전적으로 하나님께 묶여서 기도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즉, 2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판단 기준인, 하나님의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익이나, 정의나 공의가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서 하나님의 정의에 따라 공의가 시행되어서 나만 살고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서로가 바르고 행복하게 살아갈 공생의 방도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마음의 부패함을 제거할 할례를 행하여 우리의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씀, 사랑과 정의와 공의의 율법이 심기어 지고 실행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의 묵은 땅을 갈아 업어야 합니다. 할례가 갖는 의미가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언약적 관계를 맺는 것 입니다. 그러기에 할례를 행한다는 것이 이 언약적 관계를 맺고, 서로의 그 관계를 맺기 위한 약속들을 이행한다는 뜻을 몸으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 암송: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예레미야 4:4)

· 기도: (1) 하나님께 만 오로지 붙어서, 어떤 상황이든 기도로 하나님과 붙어서 살아가는 자들되며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 가운데 우리의 삶이 맞춰지는 삶이 되기를 (2) 내일 있을 모든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하나님의 공의가 선포되며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날 수 있기를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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