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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23 (렘 15:1-21) 선지자의 고통과 위로

5/5 금요일
· 본문: 예레미야 15:1-21 (선지자의 고통과 위로)
예레미야 15장은 14장 마지막의 이스라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합니다.
(1-4) 이스라엘의 범죄는 너무 심해서 모세와 사무엘이 나서서 하나님께 신원한다고 하더라도 그 심판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죽음, 칼, 기근, 포로 될 운명은 그대로 집행될 것이며, 칼과 개, 새와 짐승 이 네 가지의 벌로 실행될 것입니다. 이는 므낫세의 악행 때문입니다.

14:19-22에서 유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와 조상의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여호와의 영광의 보좌인 성소와 자신들과세우신 약속까지 내세우며 용서를 구했고 그 심판에서 건져주시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5:1-3에서 말씀하시듯, 모세와 사무엘이 나와서 그 죄의 용서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용서 해 줄 수 없을 만큼 이스라엘의 죄악이 큼을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32장을 참고하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부름 받아 40일을 비운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대신해서 자신들을 이끈 신이라고 하며, 아론을 부추겨서 금송아지 신상을 만드는 간악한 죄를 저질렀을 때, 하나님은 이 백성을 다 멸하시고 새로운 백성을 세우시려고 했습니다. 이 때에 모세가 그 큰 죄에 대한 용서를 구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을 언급하는 것은 사무엘상 7장에서 미스바 대 연회를 개최하며 이스라엘을 회개의 길로 이끌었던 대 사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가진 분노는 너무 커서 이 두 사람이 와서 중재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했던 이스라엘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므낫세로 인한 것입니다. 므낫세의 범죄에 대해서 열왕기하 21:1-18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므낫세는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히스기야가 헐은 산당을 세우고, 아합의 행위를 따라서 바알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일월 성신을 경배하며 (21:2-3), 여호와의 제단에 몰렉 제사를 지내며 자녀를 희생제물로 삼고, 온갖 사술과 신접한 자들을 불러서 여호와의 제단을 더럽혔습니다(21:6-7). 므낫세의 악행을 백성들이 그대로 따름으로 해서 온 이스라엘에 산당이 세워지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가나안 토속신을 섬기며 우상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또한 16절에서 말하듯 므낫세가 죄가 없는 자들의 피를 너무 많이 흘러서 의인들의 피가 하나님께 그 잘못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5-9)의 말씀처럼 므낫세 시대에 온갖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전역으로 퍼져 나갔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계로 흩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누가 예루살렘에 대해서 슬픔을 갖고 도울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 밖에 없으시지만, 그분이 이제 등을 돌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죽음이 드리워져 수 많은 과부가 생기며, 그들이 그토록 믿었던 일곱 아들이 지켜 줄 것 같은 어머니 같은 예루살렘 또한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10-14) 이 상황에 대한 예레미야의 불만의 토로입니다. 자신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증거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싸우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10). 그에 대한 답변으로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강하게 만드시고 그를 통해서 복을 받게 하며 환난에 그가 피할 처소가 될 것이라 하십니다 (11). 그러나, 예루살렘의 죄로 인하여서 이스라엘은 바빌론의 침입을 당하고 모든 재산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12-14).
(15-21) 다시 한 번 여호와를 향한 예레미야의 불평과 간구가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기억하셔서 자신을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자신의 이 어려움이 주를 위한 것임을 기억해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합니다. 지금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로 분노하게 하심으로 말씀을 증거했다가 현재는 너무 고통이 중하여 힘든 처지에 처한 것입니다 (15-18).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질책하시며,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서 말씀 사역을 행한다면 예레미야를 놋 성벽처럼 강하게 하시며, 그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9-21).

진리를 증거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처럼 진리를 증거했는데,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더욱 괴로운 것은 하나님이 지켜 주시겠다고 하는 그 약속이 정말 지켜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심입니다. 예레미야 자신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고 즐거운 자리에 가지도 않고, 세상의 즐거움에 취해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외톨이로 이 말씀사역을 감당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상황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이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이 느껴지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과 담을 수 없는 물웅덩이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예레미야의 이 자조적인 슬픔 가운데 마치 하나님께서 이 물을 담을 수 없는 웅덩이라고 여겨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만큼 예레미야는 지쳐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점점약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돌아온다면, 즉 자신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고 나의말을 확신 가운데 증거한다면, 하나님을 대신할 자로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를 그 잎에 두고,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놋 성벽으로 굳건하게 만드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라는 이 임마누엘의 약속을 통하여 모든 상황가운데에서 건져 주시며, 구원하시리라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우리도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예레미야와 같은 좌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가진 사상과 세계관은 그 만큼 단단합니다. 때로는 믿는 사람들 조차도 매일 매일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어 가는 중이기에 그 사이에서도 갈등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고 그 사람들의 삶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핍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지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살아갔던 삶에 대한 회의가 있을 수 있으나, 분명히 그 순간이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옳고 그가 나를 놋 성벽처럼 강하게 붙들어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확신에 대한 증거는 십자가와 부활에서 나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이 부활 하셔서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이 참 된 것임을 증거하셨고, 처음에는 연약하여 십자가 앞에서는 도망갔던 제자들이 그 이후에 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 하나님을 받고 난 뒤에는 자신들의 목숨을 내 놓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더욱 담대하게 증거하셨던 것이 저희에게 증거입니다. 오늘도 저희의 복음 증거의 삶이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더욱 담대한 가운데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 암송: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예레미야 15:11)

· 기도: (1)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의 삶이 우리 안에 행해지기를 위해 (2) 구역 모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 간의 사랑의 교제들이 풍성하기를 (3) 학원복음화를 위한 캠퍼스 기도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을 몰라 방황하는 모든 영혼들 (학생, 교직원 포함)이 복음을 접하여 구원받을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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