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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23 (렘 16:1-21) 죄로 인한 슬픔

5/6 토요일
본문: 예레미야 16:1-21 죄로 인한 슬픔
(1-9)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3가지 제한을 걸어 두셨습니다. 그 첫번째가 결혼을 하지 말며 자녀 또한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 땅에서 전쟁과 기근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4). 두 번째 제한은 초상집에 가지도 말고 통곡도 슬퍼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땅에 하나님의 평강도 인자도 사랑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모든 이들이 죽음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기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할 수 없습니다(5-7). 세 번째 제한은 잔치집에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 결혼식에 대한 즐거움과 환희의 소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8-9).
(10-13) 여호와가 내리는 재앙의 원인들은 첫째, 다른 신을 섬기며, 또한 율법을 지키지 않고 버린 것이며, 둘째 악한 마음으로 악을 행하고, 셋째,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1-12). 결과 여호와께서 이들을 심판하시고 이 땅에서 쫓아 내시고 이방 땅에서 다른 신을 섬기게 하실 것입니다. 더 이상 은혜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죄로 인해서 얼마나 우리의 일상이 파괴되고 더 나아가 본질적인 기쁨을 상실하게 되는지를 보게됩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이 정해진 심판으로 인해서 결혼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자녀도 두지 못하게 하십니다. 또한 그에게 가장 슬픈 장례식에도, 즐거움이 넘칠 잔치집에도, 가장 기뻐야 하는 결혼식에도 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인 결혼과 그것으로 인한 어떤 행복도 누리지 못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 자체도 의미가 없음을 이야기 하시면서, 어쩌면 이들이 처한 현실이 이 장례식의 죽음보다 더 슬픈 일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들의 죄로 인한 슬픔은, 하나님의 기쁨의 주체시며 근원이신데, 그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멀어짐으로 아니,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으로 슬픔이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 일어나는 결혼식이라고 해도, 결혼 자체가 즐거운 곳이라고 해서 죄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그것 자체가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슬픔은, 하나님이 “나의 평강”을 빼앗음으로 생깁니다. 평강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죄가 남아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체로 이들은 살아가야 하며, 인자와 사랑을 그들 가운데에서 제하심으로 슬픔이 가득 차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이 다시 임하게 되면, 그 가운데 평강이 있고, 그들에게 다시 기쁨이 회복되며, 삶의 아름다운 것들 (결혼과 같은 일상)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는 율법에서 이야기 하듯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 말씀에 대한 복종으로 드러나고,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 약한 자, 사회의 소외 계층들, 고아와 과부들 그리고 나그네처럼 삶이 고정적이지 않고 늘 경제적으로 사회적 신분상 어려운 자들을 돌보는 곳에 나타납니다. 그들의 삶이 바르게 대해지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정의가 실행될 때 그들의 아픈 소리, 울음과 슬픔의 소리가 사라지고 기쁨과 환희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하나님의 미소가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그곳에 있고 그곳에서 삶의 기쁨을 회복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사는 그 시대에서는 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사라졌기에 그들의 미래가 사라진 것이고, 미래에 생명이 아닌 죽음과 슬픔만이 남은 것입니다. 죄의 무서움은 현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미래가 사라지는 것에도 남아있습니다. 자신들의 삶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 대한 삶의 근거 또한 없애는것입니다.

(14-15)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잠시 멈추시고 희망의 메세지를 주십니다. 그들의 심판이 끝나면 다시 그들이 있던 곳으로 그 약속의 땅으로 다시 오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언약의 여호와로서 그들에게 나타나심)
(16-18) 그러나 이 회복이 있기 전에 이 심판은 더욱 심할 것입니다. 회복 전에 죄에 대한 정죄가 앞설 것입니다. 마치 낚시로 낚고 포수가 사냥하듯이 유다 백성들은 잡아가고 죽게 될 것입니다.
(19-21) 다시 한번 예레미야가 가진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보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요새시며, 환난 날의 피난처 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배반한 백성들을 포로로 보냈다가 다시 그들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이 능력의 여호와 인줄 다시 알리실 것입니다.

이들의 범죄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서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이며, 기쁨의 근원인데, 그들은 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오히려 조상들보다 더 큰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들이 치뤄야하는 죄값은 너무 큽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어긴 자들의 죄값에 대해서 배로 값을 것이라 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애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큰 범죄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의 죄 값이 치뤄지고 난 뒤에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인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15).

그리고 위대한 고백이 흘러 나옵니다. 만민의 입에서 “여호와는 나의 힘, 나의 요새시요, 환난날의 피난처 되십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뿐 아니라 만민의 주 하나님 되신 분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민들이 자신들이 믿었던 신들이 거짓된 신임을 고백하는 날, 하나님이 자신이 역사 가운데 구원을 일으키시는 참 하나님 되시는 분이심을 자신의 능력으로 보이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한 나라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모든 나라의 만민의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증거하실 것입니다. 원래 야훼, 즉 여호와라는 말은 출애굽 사건을 일이키시며 보이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통한 구원을 보임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애굽의 신들이 다 거짓된 신이시며 하나님이 자연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 생각하는 점: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고, 다른 사람들이 믿었던 신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이뤄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한 것입니다. 그곳을 통해서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보고 어느 날 모든 나라 사람들이 이 고백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요새시요, 환난 날의 피난처 되십니다” 그분이 구원을 일으키실 야훼이시며 만민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다시 한번 이 생명의 근원되시며, 축복과 행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붙드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곳,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와 평화가 있는곳에 기쁨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이웃에게 전해지는 그곳에 하나님의 미소가 머물 것입니다.

· 암송: “여호와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날의 피난처시여 민족들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조상들의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뿐이라 20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삼겠나이까 하리이다” (예레미야 16:19-20)

· 기도: (1) 복음의 증거와 함께 사랑을 같이 증거되며, 하나님의 기쁨을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눌 수 있기를 (2) 우리 교회가 “여호와는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 날의 피난처”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데 쓰임 받기를 위해서, (3) 주일 예배 시간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잘 자라날 수 있도록, (4) 첫 교회운영위원회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고 교회가 더욱 굳건히 서 가는데 필요한 모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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