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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23 (계 11:19-12:16) 광야의 새 이스라엘

5/9 화요일

· 본문: 요한계시록 11:19-12:16 (광야의 새 이스라엘)

요한계시록에는 8개의 장면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 장면은1-3장의 7교회를 통한 교회의 유형들, 둘째 장면은 4:1-8:1의 교회에 닥친 고난을 보여주는 일곱 인, 셋째 장면은 8:2-11:18, 일곱 나팔을 통한 세상에 대한 경고, 넷째 장면은 11:19-15:4 우주적 투쟁에 대한 일곱환상이고, 다섯째 장면은 15:5-16:21에 다루는 세상에 대한 징벌을 말하는 일곱 대접이고, 여섯째 장면이 17:1-19:10인 음녀 바빌론에 관한 심판과 멸망을 말하는 일곱 정의의 말이며, 일곱째 장면이 19:11-21:8, 천년왕국을 다룬 부분으로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일곱 환상이 기록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21:9-22:19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신부 예루살렘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 12장은 앞선 11:19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넷째 장면인 우주적 투쟁에 대한 환상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11:19에서 하늘에 있는 성전이 열리고, 그 안에서 언약궤가 있고 번개와 음성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나타나며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 그리고 권능의 모습을 펼쳐 보여줍니다.

(1-6) 여자와 용에 대한 두개의 이적이 보입니다. 이곳에는 3명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하나는 해를 옷 입고 달은 발 밑에 두고 12별의 관을 쓴 여자로서 한 아이를 해산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에 대한 묘사는 창세기 39:9-11의 요셉의 꿈에 나타난 장면과 비슷한데, 그것은 전체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큰 용에 대한 것으로 머리가 일곱이며 뿔이 10개인 용인데, 일곱 왕관을 쓰고 있는데 별 삼분의 일을 땅에 떨어뜨릴 정도로 세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 용이 여인의 아이를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용은 이후 9절에 나타내는 뱀, 곧 마귀, 사탄으로 꾀는 자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용은 뱀과 관련 있고, 시편 74:13-14을 참고하면 용의 이름을 리워야단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의 오랜 원수인 애굽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용이 애굽을 의미한다면, 해산하는 여인은 애굽에 시달림을 받는 이스라엘입니다. 이 여인이 6절에서광야로 도망친 것은, (출애굽 이후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나기 위해 시험을 거친 이스라엘 백성처럼), 고난과 역경이 아닌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안전한 장소로 도망친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더 자세하게 설명되겠지만, 여인은 아이가 하늘로 올라간 뒤 이 땅에 남겨진 교회를 의미합니다.

세 번째 등장인물은 막 태어난 “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5절에서 설명하듯이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로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갔습니다. 즉 만국을 다스릴 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으로 올려 가는 장면은 세 가지로 설명이 가능한데 첫째는 시편 2편에서 나오는 왕의 대관식으로 볼 수 도 있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승천으로 볼 수도 있고, 또 마지막으로는, 로마서 1:4처럼 그의 부활과 승천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마이클 윌코크, “요한계시록,” 141-142). 비록 그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그리스도가 탄생하셨고 승천하신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 즉 애굽이라는 대적자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옮겨간 것이란 사실입니다.

(7-16) 하늘에서 천사장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와 용, 옛 뱀 곧 사단이 무리와 함께 싸움이 있습니다. 미가엘은 다니엘 10:21에 의하면 그는 하늘에 있는 이스라엘의 투사입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진 이 뱀, 곳 사단의 무리가 지상으로 쫓겨납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하늘의 음성가운데에서 어린양의 피와 말씀의 증언으로 승리했음을 그리고 순교하면서도 신앙을 지켰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쫓겨난 용이 여자인 교회를 박해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통해서 다시 한번 광야로 가서 그 용, 즉 뱀의 핍박을 피하여 3년 반을 그곳에서 양육받으면서 그 광야에서 지내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려지고 난 뒤에 남은 이 여인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이땅에서 핍박 당하며 견뎌 나가는 교회이며, 새 이스라엘입니다. 이들이 당한 사단의 시험은 마치 예전 이스라엘이출애굽을 할 때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출애굽기 19:4 하나님은 독수리 날개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듯이 이 여인을 건져 내고, 홍해의 물을 말려서 그들을 건너게 하셨듯이, 용의 입에서 나온 물 들을 땅으로 다 받아들여서 없애시고 이 여인, 즉 교회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교회는 여전히 모세와 엘리야가 연단 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 위해서 훈련을 받듯이 광야에 남겨져 있습니다. “광야”를 히브리어로 미데바르라고 합니다. 즉, 전치사 “~로 부터”를 의미하는 “미” + 말씀을 의미하는 “다바르(데바르)”가 결합한 것이 광야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나오는 곳이 광야 입니다. 오늘 우리가 광야에 있는 것처럼 느껴 져 있다면 그곳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 일을 위한 훈련 장소로 우리를 데려다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광야의 시험을 이미 예수님께서 거치셨고 그 모든 시험을 이기신 분이 우리와 함께 그 광야에 함께 계십니다.

찬양 “광야를 지나며”의 가사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 광야에 서 있네 /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 광야에 서 있네.”

그러므로 광야, 이곳은 하나님께 말씀을 공급받는 장소며, 주님을 만나는 곳,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손길이 머무는 곳이며,우리의 훈련 장소며,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인격을 연단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을 감당할 사람으로 우리를 가다듬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가 만약 광야에 살아가는 것처럼 척박한 삶의 환경에 놓여있고, 어떤 도움의 손길도 느낄 수 없는 삶의 형편이라면, 바로 그 광야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사방이 막힌 그 곳에서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여셔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지키시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광야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오고 있음을 아시고 그 음성에 우리의 삶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 암송: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곳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2:6)

· 기도: (1) 이 광야를 지나는 신앙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위해서, (2) 우리 주변에 고통 가운데 있는 성도님들을 하나님이 독수리 날개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 내시 듯,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길 위해서, (3) 치유와 회복 가운데 있는 교우들을 위해서, (4)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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