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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23 (계 13:11-18) 두 번째 짐승: 우상

5/11 목요일.

· 본문: 요한계시록 13:11-18 (두 번째 짐승: 우상)

(11-17) 두 번째 짐승에 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짐승은 첫 번째 짐승과는 다르게 땅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요한계시록 19:20; 20:10에 따르면 짐승의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가 위선적인 인물임을 어린 양의 두 뿔과 용처럼 말한다는 상반된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11). 그리고 두 번째 짐승도 첫 째 짐승과 마찬가지고 용으로부터 모든 권세를 부여 받고 첫째 짐승을 경배하도록 하는데 협력함을 보게 됩니다 (12). 그리고 큰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우상을 만들게 합니다. 그리고 권세를 통하여서 우상에게 생기를 불어넣게 하고말하며, 짐승의 우상을 섬기게 하는데 힘을 기울입니다(13-15). 그리고 짐승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표를 주고, 그것을따르지 않는 자를 핍박하고 죽이는 폭악한 행위를 저지릅니다 (16-17).

첫째 짐승과 달리 둘째 짐승은 양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의 외모에, 용으로 상징되는 사탄같은 메세지를 내 뱉는 거짓선지자로서 묘사됩니다. 예배에 대한 관심과 마술에 대한 호소를 통해서 거짓 종교를 설파하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둘째 짐승은 인간의 종교적 측면에 관해서 말을 하며, 예배에 관해, 거짓 종교적 예배를 증거하는 자입니다. 물론 둘째 짐승의 정체를 종교라고만 보면 너무 좁은 개념을 강요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 짐승은 현대적인 말로 하면, 하나님과는 무관하게 조직된 모든 인간적 사회 구조에 ‘생기를 불어넣는’ 종교적, 철학적,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이클 윌코크, 요한계시록, 153).

이 짐승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처럼 큰 이적을 행하고,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능력을 보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비방하고 대적하며, 신자들을 핍박하는 첫 째 짐승을 섬기라고 현혹하는 것입니다. 우상들에게 생기를 줄 정도로 그의 능력을 탁월합니다. 그리고 거짓 신들인 피조물들을 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우상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의 구체적인 차이점을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주로서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대체해서 섬기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어떤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기라고 하며, 따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이적을 행한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피조물에 종속시키는 인간의 자유와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키는 행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곳에 오셔서 무너뜨린 것은 거짓 우상 숭배이며, 제사 행위가 일어나는 예루살렘의 형식적인 제사 행위였습니다. 바울이 와서 행한 일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유 속의 사랑의 행위를 망치는 율법주의(ism)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두 번째 짐승이 나와서 우리의 자유와 사랑의 본성을 무너뜨리는 우상을 섬기라고 그 대단한 이적과 기적을 보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적과 기적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많은 이적과 기적을 행하셨지만 그것은 치유함을 받는 사람들 안에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불완전한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완전한 곳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과 이적을 통하여 예수님은 그 일을 통하여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고, 연약함과 불완전한 개인들을 온전하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여서, 공의를 행하며,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기적과 이적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만일 이적과 기적을 통해서 기독교가 완성되는 종교였다면, 광야에서 보여 주셨던 만나와 메추라기 만을 먹이며 그런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만나와 메추라기처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이적을 경험하면서 그곳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즉 가나안에서 자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훈련,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룩한 성품을 지닌 사람들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8) 요한은 지혜자에게 그 수를 세어보라고 간구하기를, 그 짐승의 수는 곳 사람의 수 육백육십육입니다 .

사람들은 짐승의 수인 666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해 왔는데,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게메트리아 (gematria, 글자의 자음에 들어 있는 숫자의 값어치를 가지고 해석하는 방식)”를 사용해서 숫자 666을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즉, 히브리어의 자음이 숫자 값어치를 가지고 있는데, 네로를 히브리어로 사용하면, 이 네로의 히브리이름인 קסר נרון ( ‘가이사 네로’의 히브리어 철자)를 다 더하면 이 숫자가 된다. 100+60 + 200+ 50+200+6+50이다. (the numerical value is 666: נרון nrwn = 306 plus קסר qsr = 360, making 666 (נ = 50; ר = 200; ו = 6; נ = 50; ק = 100; ס = 60; ר = 200) (David E. Aune, Revelation 6-16, 770). 666은 또한 네로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그 이후의 로마황제들을 의미할 수도 있고, 또한 세상에 온갖 악한 일을 향했던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상징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 보다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인 면을 이야기 드리면, 13:18에서 설명하듯이, 666이란 숫자는 단지 짐승과 사람을 의미하는 것 뿐 입니다. “Beast,” is transliterated into Hebrew, תריון trywn, the numerical value of these letters is 666: ת = 400; ר = 200; י = 10; ו = 6; נ = 50 (Hadorn, 146; TDNT 1:463; Bauckham, “Nero and the Beast,” 389). 그래서 요한은 총명한 자에게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666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완전 수인777에 못 미치는 숫자를 상징할 뿐입니다. 이 숫자는 진리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진리가 아닌 어떤 것을 나타내는 숫자일 뿐 입니다. 가능한 완전에 가깝지만 완전을 이루지는 못할 숫자를 나타내는 것이 666일 입니다.

· 생각하는 점: 666으로 상징되는 짐승이 엘리야처럼 불을 내리는 능력도 갖추고 사람들을 현혹 시킬 정도로 우상에게 생기를 주기도 하며 대단한 이적과 기적을 나타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짝퉁 신, 거짓 신이라는 것입니다. 777의 완전함에 다다르지 못하는 666의 가치로서 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 내신 분이십니다 (로마서 4:17). 그러나 이들은 그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없고 피조세계에 있는 것을 가지고 능력이 있는 듯 행동을 한다는 면에서 완전한 차이를 보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단지 죽었다가 인간으로 살아난 것이 아닌, 썩을 것이 썩지 않음을입는 놀라운 일이며, 이것은 이들이 생명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그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차원의 생명력인 것입니다.

· 암송: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요한계시록 13:18)

· 기도: (1) 이적과 기적을 추구하는 거짓 종교가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며, 썩지 않을 생명을 주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참된 하나님 만을 예배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위해서, (2)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따라 공의를 행하여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위해서, (3) 666으로 상징되는 거짓 종교, 악한 세력에 의해 피해를 입는 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런 악하고 미워하는 마음에서 일어난 달라스 총기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위해서, (4) 지금도 세계 각 처소에서 복음을 증거하시는 선교사님들과 저희 교회가 후원하고 계신 권종승, 김정호, 안지현 선교사님과 심수영 목사님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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