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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23 (계 18:11-24) 바벨론 성의 멸망의 이유들

5/20/2023 토요일

· 본문: 요한계시록 18:11-24 (바벨론 성의 멸망의 이유들)

(11-13) 9절에 바벨론에서 같이 음행하고 사치를 부리던 왕들이 슬퍼한다면, 이곳에서는 같이 경제적 이득을 누렸던 상인들이 자신들이 거둘 이익이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아 슬퍼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이 팔았던 상품은 온갖 금은 보화와 비싼 비단과 붉은 옷감이며, 향내 나는 나무와 각종 상아 그릇이며, 값진 나무와 구리 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각종 사치품과 같은 그릇이며, 그 외에도 계피와 향료 같은 비싼 음식에 사용하는 향신료 등과 포도주 감람유 등 실로 어마어마한 종류의 고가의 사치품들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소와 양 말과 수레 종들과 그리고 사람의 영혼들까지 팔았던 것입니다. 앞에서는 상품을 팔았다면, 이곳에서는 사람을 주고 팔고 종으로 만들어서 부리고, 거기에 영혼까지 말살 시켜서 상품화 시켰다고 하니, 이 바벨론이라 불리는 로마,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도시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14-19) 계속해서 상인들의 슬픔이 표현되는데, 그것은 위와 동일한 내용입니다. 바벨론이 탐냈던 것은 하나님께 대한 영광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영혼을 만족시키는 탐욕이었습니다 (14). 상인들이 그 무너져 가는 것에는 동참하고 싶지 않아서 저 멀리 떨어져서 자신들이 더 이상 바벨론을 통해서 이득을 차리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한 시간, 즉 오랜 세월 유지되던 그 곤고한 정치와 손잡고 경제적 이득 공동체로서 존재했던 그곳이, 한 순간에 무너짐에 망연자실 하듯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16).

그리고 바벨론에 물건을 갖다 대던, 배를 몰던 선장과 선원들도 그저 멀리 불타는 바벨론의 연기를 보고서 슬퍼하며 외치기만 하는 것입니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라 말하며 슬퍼하지만, 그 슬픔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원래 재나, 땅의 티끌을 뒤집어 쓰는 것은 이제까지 삶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의미이나, 지금 이들이 보이는 것은 자신들이 더 이상 이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슬픔일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업이 망했다는 것에 대한 슬픔의 표시 일 뿐 입니다 (19).

(20-21) 바벨론에 내린 심판과 다르게, 하나님은 자신의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즐거워 하라” 말씀하십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친히 행한 일이며, 심판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간 자들의 integrity 정직, 성실, 순결성에 대한 보상이며, 말씀대로 살아간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20). 바벨론의 상인 조합들은 각자의 신들을 섬기고 있었고, 만약 신앙인이 이 경제공동체에 속하려고 하면 이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섬기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랬기에 많은 신앙인들은 경제적인 손실을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었고 신앙의 순결성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 G. K. Beale, The Book of Revelatio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919).
(21) 그리고 계속해서 바벨론의 멸망 받는 모습을 큰 맷돌 같은 돌을 바다에 던져서 완전히 가라 앉아 사라지는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 속에 가라앉은 돌맹이처럼 바벨론은 완전히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심판은 한 번에 단 순간 일어나며 완전한 심판이어서 더 이상 악의 근원을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실로 과거의 화려한 모습에 비하면, 그들이 무너지는 모습은 비참할 정도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과거를 기억함도 없이사람들의 뇌리에서도 완전하게 사라질 심판입니다 (21).

그 안에서 풍요를 즐기며, 자신들을 위해서 울렸던 풍악 소리도 나팔과 즐거운 소리도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들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면서 즐겼던 그 즐거움에 대한 심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땀 흘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흘린 땀을 착취한 것에 대한 심판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더 이상은 착취와 억압의 아픔의 소리가 억눌리고, 그 아픔의 소리를 무시하는 착취와 탐욕의 즐거움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것입니다.

(22) 그리고 탐욕의 상징인 보석을 세공하는 자들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사치로 인해서 자신의 안위를 돌봤던 자들의 허영심이 무너져 내린 것이며, 사치를 위해서 희생되어야 하는 노동의 아픔도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시대가될 것입니다. 지금도 다이아몬드나 고가의 광물을 캐기 위해서 희생당하는 어린 아이들과 노동자들의 고통에 비해서 저 임금으로 봉사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고대에는 그 희생이 더 컸습니다. 그럼으로 그 사치품을 위해서 밑에서 고생하던 사람들의 고통도 이 심판으로 그칠 것입니다.

또한 맷돌 소리 또한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언급한, 사치를 위한 생산 품도, 보석도, 풍요의 소리 뿐 아니라, 먹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산품을 만드는 맷돌 소리 조차 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대농장주들은 하인들이 땀 흘려서 일궈낸 곡물을 먹기만 하고, 즐기기만 하던 자들입니다. 종들처럼 땀 흐리는 자들이 맷돌을 돌리며 얻은 곡물의 수확은 정작 땅을 개간한 자들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고 거의 다 위에 상류층들이 귀족들이 다 챙겼기 때문에 노동하는 사람들은 쉬지도 못하고 일하지만 거의 얻지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거기다 로마의 특성상 대농장 주인은 종들을 부리면서 수확을 거뒀지만, 자영농민은 로마의 군대에 회부되면 자기 땅을 가꾸지 못하는 형편이 되고 땅을 돌보지 못하게 됨으로 해서 가지고 있는 땅도 빼앗기는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맷돌을 돌리는 것이 그침은 단순히 먹는 것에 대한 문제 뿐 아니라 잘못되어 있는 토지제도와 땅을 사유화한 자들에 대한 심판이기도 합니다.

(23-24) 그리고 사람이 사랑하고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행해지는 결혼식도 더 이상이 이뤄지지 못하기에 더이상 악의 세력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벨론이 망하는 것은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의 피가, 그 의로운 자들의 피가 이 사회를 고발함으로 남아 있고 하나님이 이 의인들의 고통과 죽음과그 피를 기억하시고 바벨론에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한 순간입니다. 전혀 망할 것 같지 않은 그 바벨론이 한 순간 망한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라도 바벨론이나 로마,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문화와 생각과 가치관에 발을담그고 있다면, 급히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바벨론을 통하여서 부를 축적했던 고관 대작들 뿐 아니라, 상인과 선원들처럼 자신의 이득이 사라지고, 경제적 이득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만 슬퍼할 일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의 소중한 인생이 무너진 것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고 참된 회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요한계시록 16:15에서부터 요한은 계속해서 이 한순간의 몰락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예언을 귀담아 들었던 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준비 없이 이 심판을 맞이할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그 죄를 물으실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만 경계해야 할 것이 아니라, 믿는 우리들도 계속해서 복음의 진리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암송: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8:20)

· 기도: (1) 바벨론의 문화에 속하지 않도록 깨어, 서로 돕고 협력하고 사랑하며 희생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2) 이 심판의 때를 생각하며 믿지 않는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열심을 가질 수 있도록, (3) 여름방학 기간 동안 한국을 방문하시거나 여행을 떠나는 성도님들의 안전한 여행과, 어느 곳에서든지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되기를 위해서, (4) 내일 예배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예배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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