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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23 (고후 1:1-11) 고난 가운데 넘치는 위로

5/23/2023 화요일

“하늘의 소망이 그에게 기쁨을, 그 기쁨이 그에게 능력을 가져다 준다” (리차드 백스터)

본문: 고린도후서 1:1-11 (고난 가운데 넘치는 위로)

(1-2) 편지의 인사말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편지의 저자로서,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가진 자신의 사도로서의 정체성입니다. 갈라디아서 1:1 을 참조하시면, 바울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고 자신의 사도권이 사람의 전통과 가르침으로 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도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리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하나님”으로부터 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울이 자신의 형제인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에 있는 교회와 온 아가야 지역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사실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들을 성도라고 부르기에는 겉모습만 봐서는 힘듭니다. 고린도전서에는 그들 안에 지도자로 인한 분당의 문제가 있고,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하고, 성도들 간에 송사의 문제가 있는 등, 이들의 외면적 모습으로만 보면 이들이 정말 성도가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들과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별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성도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헌신함으로써 은혜로운 하나님이 특별한 존재로 여기시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들의 삶 가운데 성령님의 역동적인 임재를 허락하심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셔서 그들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기 때문에 성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폴 바네트, 고린도후서강해, 32-33. 참고:고린도후서 3:18; 로마서 12:1-2).

그리고 바울은 이런 성도들에게 오직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주실 수 있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벌어진 인간의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습니다. 이 죄의 담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인간은 영원한 불안과 공포 가운데 지낼 수 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하나님이 그 죄의 형벌을 걷어 주셨고 사람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심으로 평화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받을 자격없는 자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7)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편지를 이어 나갑니다. 왜 찬양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자비의 아버지이고 모든 위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우리를 환난 가운데에서 위로하시는 분이시며, 그 위로를 통하여 우리가 다른 환난 중에 있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도록 인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파 본 자만이 아픈 자의 마음을 이해하듯이, 고난에 처한 자만이 그 고난에 처한 자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형상으로 보내셨기에, 인간의 아픔과 괴로움을 이해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2:9에서 예수 그리스도는“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10절에서 “고난을 통하여” 구원의 창시자로서 온전하게 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환란을 겪는 와중에도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과 환란이 아무 목적없이 의미 없는 일이라면, 화를 내야 할 일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과 환란이 예수 그리스도가 겪으신 것처럼 온전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고난을 이미 경험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우리를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위로함을 경험하였기에 우리 또한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할 능력을 이제 갖추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4절. 참고 로마서 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어야하는 것). 고난 가운데 위로함으로진정한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고난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은 5절에서 말씀하듯이 첫 째로, 우리에게 고난이 넘치면 넘칠수록 반대로 우리가 받게 될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위로가 더욱 더 커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둘 째로 우리의 환란은 우리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공동체에게 더 큰 유익이 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란을 당하면 같은 공동체원들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되고, 세번째로, 이 위로가 다른 공동체 안에서도 역사함으로서 같은 고난을 견디는 힘을 그들이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고난을 견딘 다른 사람 또한 위로에도 같이 참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7). 그리고 이들이 결국은 선한 영향력으로 고난에 있는 자들을 다시 위로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8) 사도바울은 8절에서 실제적으로 자신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사도행전 19장 나오는 에베소에서 전도사역을 하다가 그 지역의 아데미 여신상을 파는 자들에 의해서 폭동으로 인해서 공격당하고 목숨에 위협을 당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환난을 당한다고 말할 때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동족인 유대인들의 반대와 음모 때문에 늘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서 빌립보 지역에 들어 갔습니다. 그 지역에서 귀신들린 종을 구해줌으로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풀려 난 뒤에 데살로니가 지역으로 갔을 때에도 그곳에서 바울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고난을 겪고 도망치듯 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의 선교는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힘든 과정을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느 정도로 힘든 단계까지 간 것이냐 면,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 정도였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9-11) 여기에서 바울의 중요한 고난에 대한 시각이 드러납니다. 9절 하반부에서 이 고난의 의미를 해석할 때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의지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가운데 죽음 안에서 다시 살리심을 얻은 능력을 경험한 자로서 이제 같은 믿음의 공동체인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담대하게 간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도 기도로 우리를 도우라. 오직 기도함으로 이 은사, 즉 죽음 가운데에서 담대하게기쁨을 위로를 증거할 수 있는 그 능력을 얻었고, 이 일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 또한 기쁨 가운데 감사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함으로 같이 이 길을 헤쳐 나가자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생각하는 점: 하나님의 위로는 한 사람만 받고 끝나지 않고 그 위로가 계속 연결됩니다. 한 예로서, 고린도후서7:6-7에는 하나님께서 디도가 마게도냐로 온 것을 통해서 바울을 위로하셨고, 디도는 그 전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바울이 고린도 인들을 위로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주신 이유는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참된 생명의 주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함입니다. 고난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분을 찾게 한다면, 그 고난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자기에 대한 낙담으로만 끝난다면 고난은 저주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찾게 하고 더욱 의지하게 한다면 그 고난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베풀어 주신 훈련입니다. 왜냐하면 이 한 번의 고난 가운데 건져 내심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사망의 깊은 언덕에서 자신을 계속해서 건져내는 하나의 징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일이 우리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복음의 삶을 살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더욱 굳건하게 세워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환란에서 우리가 자신의 약함을 경험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위로로 우리를 충만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마지막 간구처럼 오직 서로 기도함으로 힘을 합하여 이 일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기도의 공동체를 선물로 주신 이유입니다.

· 암송: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 1:3-4)

· 기도: (1) 영육간에 고난과 환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기를 위해서, 특별히 병중에서 치유와 회복 가운데 있는 환우들 가운데 하나님의 큰 은혜와 기쁨이 넘칠 수 있도록 (2) 전적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간구하는 자되며, 더 나아가 위로 받는 자에서 위로하는 자 될 수 있기를 (3) 우리 스테이트칼리지 교회가 하나님의 아버지의 위로와 능력의 통로로 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사용 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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