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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9/23 (눅 5:17-26) 신성모독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7/19/2023 수요일

· 본문: 누가복음 5:17–26 (신성모독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예수님은 바로 전에 문둥병자를 만지시며 그를 치유하셨습니다. 사회에서 부정하다고 판단되어 격리시킨 문둥병자를 손으로 만지시고 그를 깨끗케 하신 분이십니다. 그의 부정을 자신의 거룩으로 덮어서 그의 악함을 선함으로 바꾸어 주셔서 사회에서 분리된 자를 언약의 공동체로 이끌어 주셨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한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심으로 그를 완전케 하셨고, 또한 오늘의 논쟁이 되는 “죄사함”의 은혜를 베풀며 자신이 사람의 죄를 깨끗케 하실 수 있는 권능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17-20)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말씀을 증거하시는데 평상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것은 갈릴리 마을에서 말씀을 증거하는데, 유대교의 중심지인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참여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어느새 갈릴리 지역을 벗어나서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까지 들어가서 예수님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이 내려온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의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분위기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이어진 것입니다.

이때에 한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해서 그의 친구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 했으나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접근할 수 없어서, 지붕을 뚫고서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사신 곳이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아니었기때문에, 당시의 집 지붕은 큰 나무를 놓고 그 위에 종료 나무 가지와 진흙으로 얼기설기 만들었기에, 그지붕을 뜯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얼마나 다급하고, 중요했으면, 그리고 예수님이 그의 친구를 치료하실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이 컸으면, 지붕을 다 뜯고 그를 내릴 용기가 있었겠습니까…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감동하셨고,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1-23)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들고 일어나라”든지 “너의 병이 치유함 받았다”라는 말을 하신 것이 아니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할 때 이것이 얼마나 큰 신성모독인지, 오직 하나님 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데, 예수님이 그 이야기를 하시니, 그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그들에게 오히려 반문을 하셨습니다. “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와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우냐?” 사실 두 개 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결과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평가할 때에는 죄 사함이라는 선포에는 신성모독의 말만 있을 뿐이지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에 대한 것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들고 일어나 걸어 가라”라는 말에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기 때문에 실제인지 거짓인지를 바로 눈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면에서 사건을 보고 이성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병을 치료하는 일이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네 죄가 사하여졌다”라는 영적인 실체를 평가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24-26) 그래서 이런 사항을 잘 알고 계시던 예수님이 다음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24). 그리고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이후에 자신이 죄를 사하는권세가 있다는 것을 (즉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실체)를 증명하기 위해서 중풍병자의 병 또한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을 들었던 중풍병자가 병이 낳았고 자기가 방금까지 누워있던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았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놀라운 일을 보았다”라고 말하며 큰 두려움과 경외감에 빠진 것입니다. “신성모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 생각하는 점: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이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네 죄가 사해졌다”는 말이 신성모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님이 신성 모독을 행한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이 신성모독을 행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실제로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 뿐 아니라 죄를 사하여 주실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을 가진 것을 부인하는 것이 신성모독입니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삶의 많은 부분에서 주님의 개입을 원치 않고 그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신성모독입니다. 그 불신의 행위가 신성모독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신성모독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능을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마음 깊숙이 여전히 부인하는 신성모독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망컨데, 우리의 삶의 모습이 중풍병자를 지고 왔던 그의 친구들처럼 모든 삶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확신, 용기를 가지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신성모독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하신 일에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 암송: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누가복음 5:24)

· 기도: (1) 어떤 삶에 있던지 문제의 답을 가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영광 돌리며 살기를 (2) 어떤 시험 이든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분별함으로 시험들을 이겨 나갈 수 있기를 위해서 (3) 병환 중에서 회복되고 있는 환우들이 온전히 치료될 수 있기를 위해서 (4) 7월21-23일에 있는 중고등부 수련회 (주제: 쉼, 회복, 그리스도 안의 연합)를 위해서 (5) 수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위해서, 교회와 스테이트 칼리지 지역과 학원의 복음화와 가을학기에 들어올 새가족을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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