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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8/23 (눅 7-11-17) 절망 가운데 소망을 베푸시는 하나님

7/28/2023 금요일

· 본문: 누가복음 7:11-17 (절망 가운데 소망을 베푸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평지에서 말씀을 증거하시고, 자신이 메시야 되심을 백부장의 죽어가는 종을 말씀으로만 고치시는 이적을 통해서 보이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백부장이 보인 놀라운 믿음의 자세를 주목하셨습니다. 그의 놀라운 믿음의 자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힘이 없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겸손하게 예수님께 간청하고,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지위를 내려 놓으며, 전적인 긍휼을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오늘 말씀에서는 앞선 백부장의 부탁과는 다르게, 아무 누구의 간구함 없이 순전히 예수님 자신의 깊은 안타까움과 공감에서 일어난 이적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부장과는 다르게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힘 없고 천대 받는 과부에 대해서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고 그의 삶의 가장 필요한 부분 (죽은 아들을 살려 돌려 주심)을 도와 주심으로 자신이 이 땅에 생명의 주로,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러 오신 하나님 이심을 보이셨습니다.

(11-15) 예수님이 나인이란 성으로 제자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셨습니다. 마침 그때에 성문 근처에 일단의 무리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왔습니다. 그는 한 어머니의 독자이며 그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예수님은 과부를 보시고 그의 마음에 긍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부를 향해서 울지 말라 말하시며, 죽은 아들의 관에 손을 대시며 말씀 하시기를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을 뿐 아니라, 말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었다 살아난 아들을 데리고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심성과 신성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성, 즉 그 마음은 언제나 연약한 자들, 힘없는 자들, 슬픈 자들의 삶에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누구라도 아픔과 슬픔 가운데 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바램도 요청도 없는 순간에, 과부가 되어서 삶의 어려움 속에 처한 상황에서 이제 하나 남은 아들을 떠나 보내는 어머니를 보셨고, 그 어머니의 슬프고 절망 가운데 있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셨습니다. 그녀를 향한 긍휼의 마음이 생기셨고, 그 어머니의 상실과 슬픔의 눈물을 기쁨과 환희의 눈물로 바꿔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려서 어머니에게 다시 돌려 주시며 그녀의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을 채워 주셨습니다. 이제 모자가 다시 함께 있음으로 과부에게 필요한 가족의 평안과 따뜻함, 아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돌려 주셨습니다. 이렇게 생명을 살리시고 평안을 회복하시고 자유와 행복을 주시는것이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의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면서 자신이 생명의 주인 되는 분이심을 알리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시간에, 죽은 자를 떠나 보내기 위해서 상여를 메고 나오는 그 길 가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으로서 희망이 없는 그 곳에서 생명의 불꽃을 일으키시고죽어 있는 그 마음들에 산 소망의 씨앗을 뿌리신 것입니다. 한 생명만을 살린 것이 아닙니다. 죽은 아들을 살림으로, 살 희망이 없는 어머니를 살리셨고, 그 주변에 수 많은 죽음으로만 끝나는 소망 없는 인생들의 마음에 생명의 기쁨을 선물로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생명과 빛과 소망과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시며, 죽은자를 살리심으로 그 분은 그 일을 충분히 행하실 수 있는 분임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장차 있을 부활에 대한 하나의 예시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메시야로서 이 땅에 빛으로 참된 진리로서 사람들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갈 길을 알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으로서 자신 만이 참된 생명을 선사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이 사건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육적으로 죽어 있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죽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리시려고 하는 것은 육의 생명 뿐 아니라, 영적으로하나님과 떨어져서 세상의 거짓된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죽은 영혼들 또한 살리시는 것입니다.

(16-17) 예수님의 이적을 목격한 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일단 모든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일에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곧 경외감으로 바귀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 나셨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구약 시대의 엘리야나 엘리사가 죽은 사람을 살렸던 것을 기억하고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또 외치기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라고 했습니다 (참고, 이사야 7:14).

예수님이 일으키신 일은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할 일이었고 경외감에 떨게 만들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행하시지 않으면 누구도 할 수 없을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 일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일로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고백처럼 주님은 분명 이들을 돌보시고, 이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생명을 주어서 모든 이들을 살리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 생각하는 점: 예수님은 소망이 없는 곳에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가 겪는 아픔과 슬픔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방관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사회에서 가장 힘 없고 연약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과부의 아픔에 공감하셨던 주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의 어려움에도 주님은 보고 계시고 손을 내밀어 그 아픔 가운데 있는 자들을 붙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군가 슬픔과 절망의 상황,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셨다면, 조용히 주님이 그 상황에 오시도록 나의 한 부분을 내어 드리며 기다리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이십니다. 오늘도 그 분이 오셔서 아무 소망도 희망도 없는 곳에 참된 생명으로 희망을 선물로 주실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 이름이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는 분이십니다.

· 암송: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누가복음 7:16)

· 기도: (1) 어떤 삶의 모습이든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기를 (2) 아직 복음을받아 들이지 않은 우리의 부모님, 자녀, 친지와 친구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음을 접할 수 있는기회를 주시기를 (3) 스테이트 칼리지 지역과 펜스테이트 대학의 복음화를 위해서 늘 깨어서 기도하며, 각자의 삶의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자로 살아가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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