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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23 딤전 (1:12-20) 긍휼을 입은 우리들

9/1/2023 금요일

· 본문: 디모데전서 1:12-20 (긍휼을 입은 우리들…)

바울은 1: 3-11에서 에베소 교회를 섬기는 디모데에게 신화와 족보와 같이 복음을 가리는 것에 마음에 두지 말고 오로지 바른 교훈과 가르침에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 가운데 들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대단하고 값진지 본문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12-17은 바울이 경험한 은혜에 관한 내용이며, 18-20은 이 은혜를 기반으로 디모데에게 하는 권면입니다.

(12-17) 바울은 자신을 충성되게 여기셔서 그의 복음을 증거할 자로 여겨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함으로 본문을 시작합니다. 그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은혜와 긍휼이 자신의 과거의 죄, 허물을 다 덮고 새로운 삶과 새 직분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 바울은 이 은혜를 경험하기 전에, 율법을 쫓아서 (앞에서 율법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던 것처럼… 그러나 자신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고 살았던 복음에 완전히 반대된 삶을 살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교회를 핍박하고 그리스도를 모욕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폭행하고 죽이는데 가장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생자”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그 죄를 씻을 수 없을 것 같은 그의 죄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씻은 바 된 것입니다. 즉 그의 과거의 박해자요 폭행자 된 삶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된 것은 전적으로 14절의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사랑에 의하여 자신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죄를 씻어 주셨고, 그를 의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 뿐 아니라 그에게 사명까지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15절의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라는 이 고백이 바울에게는 실재로 경험한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기에, 사도행전 9장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을 찾아서 핍박하고 죽이려는 그 현장에서 주님이 그에게 찾아오셔서 계시하시고 깨닫게 해 주신 은혜가 너무 컸던 것입니다. 그가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던 교회를 핍박했던 죄인이었기에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가 주님의 은혜와 긍휼에 감사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엄청난 죄를 지은 자들도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증거가 된 것에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그 삶이 저주로 화로 죽음으로 끝나야 하는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인해서 구원 받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오래참으신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참으시며 구원의 길을 여신다는 그 사실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한 영광의 찬송이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한 구절이 하나님의 영원하고, 썩지않고 보이지 않으시며, 유일한 하나님의 속성의 위대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영원하신 왕이십니다. 인간의 유한과 비교되는 시간의 영원함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영원은 시간을 넘어 있다는 분이시며, 시간의 변화와 역사를 넘어서 다스리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온 천지를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와 권력들이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으스댈 지 모르나,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통치 아래에 있을 때에만 그 주권이 정당성을 부여 받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썩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어진 피조물처럼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십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변화하고 사라져 가도록 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썩지 않으신 생명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피조물과 창조주의 차이를 나타내는 속성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즉 이것은 그의 초월성과 인간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신 불가해한 하나님의 속성을 말해 줍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은 유일하신 홀로 계신 분이십니다. 세상에 수 많은 신이 있다고 하나 하나님 만이 유일하시게 진정한 신으로 불림 받으실 분이십니다. 그 분만이 참된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시며 우리의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수 있는 홀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썩지 않음에 대한 찬양은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부활의 영체에서 누리게 되는 속성을 설명해 주는 면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해 피조물로 있을 때에는 썩을 존재로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부활을 옷 입을 때에는 그 썩지 않음을 입음으로 피조물의 한계인 죽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영원한 삶 가운데 머무르게 되는 것을 썩지 않는 다는 것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심과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에 대한 찬양을 하는 것은 자신의 과거의 어리석음에 나타나는 핍박과 비방 폭행이라는 죽음과 어두움의 속성과는 전혀 다른 인내를 통한 소망과 생명에 대한 기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그 깊은 어둠 가운데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변화를 받고 보니 하나님의 영원과 그리스도의 오래 참음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구원에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더욱 깊은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18-20) 그리고 더불어서 자신이 받은 그 복음의 놀라운 일들을 디모데와 함께 나누면서 디모데에게도 이 복음의진리의 교훈 가운데 머물며,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와 사랑가운데 행하며 오래 인내하는 것이며, 동시에 19절에서 언급하듯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싸워나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6:11절 이후에 영적인 싸움을 위해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한 반면 여기에서는 믿음과 선한 양심 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선한 양심에 대한 부분은 이미 1:5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믿음과 선한 양심을통하여 이뤄내는 사랑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모든 싸움을 이겨 나갈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과 선한 양심으로 이뤄지는 사랑, 즉 복음에 관한 일에서 떨어져 나간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었고그들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들을 사탄에게 내어 준 것은 그들이 교훈을 받기를 원함이며 또한 복음 가운데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하나님을 더 이상 모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 생각하는 점: 바울이 교회를 비방하고 핍박하는 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속성과 그의 일하심에 대하여 찬양하며 영광을 돌림을 보게 됩니다. 율법에 가리워져 눈이 어두워 생명의 복음을 죽음으로 핍박했던 그의 행실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바뀌게 됨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우리 또한 우리의 죄의 깊음 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고 깊고 넓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 죄인의 어둠 속에 거하는 시간 보다 더 크셔서 우리를 구원하도록 인내하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환경에 따라 변하지만 하나님은 늘 거기 변함없이 계시며 영원토록 그곳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기다리시며 사랑하고 또 사랑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이 복음의진리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고 복음의 진리가 굳건해 져서 바른 교훈과 복음의 진실에 감사하며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 암송: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모데전서 1:16)

· 기도: (1) 죄인이었던 과거에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죄에서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 되도록 (2)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우리의 부모님, 자녀들, 친지와 친구들을 위해서 (3) 청년부 모임 안에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시간 되기를 (4) 학원복음화와 지역 사회를 위한 기도 모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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