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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23 딤전 (5:1-16) 성도들을 가족처럼 도우라

9/12/2023 화요일

· 본문: 디모데전서 5:1–16 (성도들을 가족처럼 도우라)

(1-2) 바울은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늙은이, 젊은이, 늙은 여자, 젊은 여자를 구분하면서그들을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에게 하듯이 대우하라는 권면은 교회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한 가족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예수님께서 지상사역을 하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50에서 “누가 나의 부모이며 형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의 가족과 혈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중동 지역의 문화에서, 이런 가르침음 매우 혁명적이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의 사회 구조와 가족 구조를 복음 중심, 하나님을 아버지로 해서 새롭게 이해하며, 영적인 가족의 유대성 가운데 우리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전환점을 보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이해는 전적으로 복음으로 새롭게 된 우리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몸된 지체이며, 하나의 가족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가르침을 기반으로 교회 공동체의 역할을 보게 하고, 디모데에게 교회 안의 구성원을 하나의 가족 공동체 안에서 이해하도록 도와 줍니다.

(3-10) 과부를 돌보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과부를 돌본다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힘이 없고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부계 중심의 사회에서 Patriarchal Society 여인들, 특히 과부들은 생계 수단에 제한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회 안에 하나님의 의가 가장 잘 실현되고 있는 지에 대한 기준을 고아와 과부 같은 사회 밑 바닥에 있는 사람들, 소외되고 경제적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에 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닿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과부 중에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가족에게 그 부양 의무를 우선적으로 두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가족이 우선적으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갚음으로 그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아무 힘없고 연약하며,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조금이라도 알고 이해하며 그에게 감사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3-4). 또한 7-8절의 권고대로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지 않는 것으로 믿음 없는 행위이며, 악한 행위입니다.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도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사람이 떨어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야고보서1:27에서 말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이 아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참된 경건의 실천이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참 과부인 자들을 도와야 합니다. 5절의 외로운 자라는 것은 그를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매일의 삶에 대한 것을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와 간구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단순히 삶의 생계 뿐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향락을 좋아하지 않고 신실한 삶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존경을 받을 만 한 사람입니다 (참고 누가복음 2:37의 여선지자 안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향락을 좋아한다는 표현에서 삶을 위해서 매춘을 하는 행위까지 해석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지적하는 것은 거룩을 추구하지 않는 영적이지 않은 육적인 삶,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영적인 공허함으로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같은 삶이란 것입니다. (로마서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래서 참된 과부는 육신이 연로하고 (60이상), 한 남편과 가정을 이루었고, 가정과 사회에서 남을 돕는 선한 행실을 가진 삶의 모본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삶이 이미 도움을 주는 삶이었고, 이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삶이 되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교회 안의 진정한 도움의 선순환입니다.

(11-16) 그리고 젊은 과부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젊은 과부에 대한 경고는 육체적 본능을 따라서 재혼을 함으로서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믿음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정죄를 받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조심할 것은 여기에서 재혼을 하는 것이 죄라서 정죄를 받는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14절에서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젊은 과부는 재혼을 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며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이 복음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15에서도 여인들이 정숙함, 믿음과 사랑에 거룩함에 거하여 아이를 낳음으로 구원의 삶을 이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젊은 과부에 대한 경고는 재혼에 대한 것이 아니라, 13절에서 말하듯이 자기 욕망에 따른, 자기 중심적이며, 방종하는 삶에 대한 경고로서, 이런 삶이 사탄을 따르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제멋대로 부도덕적인, 외설적이거나 음탕한 삶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William D. Mounce, Pastoral Epistles,290).

· 생각하는 점: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이며 서로의 연약을 짐지는 곳입니다. 사회가 아닌 교회 안에서는 약한자가 멸시받고 천대받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필요를 공급받고 위로를 받으면서도, 그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아야 합니다. 미움과 멸시가 아니라 사랑과 존중이 교회 공동체 안에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을 베풀 능력을 주셨고,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 도움의 통로가 되어야 할 뿐입니다. 과부를 도우라는 이 명령은 우선적으로는 과부를 돕는 일이지만, 비단 과부만이 아닌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사람들을 도우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명령이십니다. 서로 도움으로 교회 공동체가 더 단단하여 질 것입니다.

· 암송: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디모데전서 5:1-2)

· 기도: (1)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마음으로 물질로 가난한 자를 돕고 세워가는 교회되기를 (2) 저희 교회가 스테이트칼리지 지역의 믿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도록 (3) 가을 학기동안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건강을 허락하셔서 잘 준비되어 더욱 더 큰 나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4) 불신 가정들을 위해서, 자연 재해로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5) 오늘 있을 PCA 한인 동부노회 정기 노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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