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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23 삼하 (11:1-27) 다윗의 범죄: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9/16/2023 토요일

  • 본문: 사무엘하 11:1-27 (다윗의 범죄: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

사무엘하 8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정복한 나라에서 거둔 금은을 포함한 노획물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온 나라를 다스리며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서 나라가 더욱 부강해 갔습니다. 그리고 이후 10장에서는 암몬 왕이 죽었을 때 다윗이 애도하기 위해 외교사절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이것을 오해해서 화친의 의미가 아닌 나라를 침범하려는 행위로 받아들여서 두 나라 사이에 외교적 문제가 생기고 암몬과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암몬 연합국과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암몬이 패하고 다시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1-4) 이런 상황에서 본문 11장에서는 해가 돌아와서 왕들이 출전해야 하는 전쟁에 다윗은 출전하지 않고 요압과 이스라엘 군대만 내보냅니다. 다윗이 왕의 임무를 다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그때에 죄를 범하게 되는 사건을 발생합니다. 다윗의 군대가 암몬을 멸하는 때에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보게 되고 그녀와 동침함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이것은 다윗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 (전쟁터, 임무)에 있지 않고 없어야 할 곳 (왕궁, 평안함)에 있게 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책임진 자로서 돌아야 할 것을 돌보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다른 여인, 공적인 일이 아닌 개인적 이익에 관심) 것을 봄으로 해서 범죄하게 된 일입니다.

(5-13)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또 다른 범죄의 현장으로 다윗을 이끌어 가게 됩니다.그것은 자신이 밧세바와 부적절한 관계의 죄를 범했고 그녀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우리야를 불러들인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장수를 예루살렘의 범죄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야의 태도는 다윗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그는 다윗의 여러 전쟁에 관한 상황과 안부에 답을 한 이후에 집에 가서 쉬라고 하는 왕의 명령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궁 문에서 다윗의 부하들과 함께 잔 것입니다. 편한 집안에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거친 곳에 왕의 군대와 함께 거한 것입니다. 우리야는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우리야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잘못된 곳에 불려 왔지만, 잘못된 시간과 잘못된 장소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행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다시 우리야를 불러 집에서 쉬지 않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이 다윗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하고, 이 글을 읽는 우리의 마음에 큰 깨달음과 감동을 줍니다. 11절입니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이 순간에 왕으로서 다윗이 잊고 있었던 내용들이 오히려 장수 우리야의 입으로 외쳐진 것입니다. 언약궤가 전장에 있다는 것은 전쟁에 언약궤를 가지고 감으로 하나님이 그 전쟁을 이끄신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을 위해서 전장에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유다 뿐 아니라 요압과 왕의 부하들이 야영중에 있기 때문에 우리야는 그 전쟁의 한 가운데 있고, 비록 지금 전쟁을 벗어나 있는 이곳에서도 전쟁 중에 있는 모든 이들과 같은 위치에 있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과 우리야를 비롯한 전쟁에 참여한 이스라엘 백성과 정 반대의 위치에 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야는 더욱 힘있게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이 더욱 다윗의 마음을 찔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난 뒤에 다윗이 한 일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거나 회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야의 사명을 더 흔들고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서 억지로 하루를 더 머물게 하며 군인으로 원하지 않는 술을 마시게 해서 취하게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야는 아내 밧세바에게 가지 아니하고 다윗의 부하들과 함께 거합니다.

(14-27) 그러나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던 다윗은 우리야를 속이는데 실패했고, 이제 우리야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요압에게 우리야를 부대의 최고 앞선 곳에 두어 전투가 벌어 질 때에 그가 죽도록 다른 군인들은 빠지라고 하는 편지를 써서우리야에게 주고 요압에게 전해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압은 그 편지의 내용대로 전투 중에 헷 사람 우리야를 죽게 합니다.

요압은 다른 몇 명의 왕의 부하와 함께 우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고 다윗은 우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며 요압에게 이 일로 근심하지 말라 말하며 답장을 보냅니다. 그리고 남편 우리야의 죽음에 밧새바는 슬피 울고, 그의장례를 치르자 마자 다윗이 그녀를 아내로 취하고 아들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여 우리야의 아내 밧새바를 취한 것, 우리야를 속인 죄, 더 나아가 그를 죽인 죄,그리고 다른 사람까지도 이 살인에 가담시킨 죄 등 모든 것들을 알고 계셨고, 이 본문을 기록한 성경 기자는 이것에 대해 다윗의 죄가 분명히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라는 말로 분명히 밝혀 놓았습니다.

· 생각하는 점: 다윗의 이 죄악이 거론 될 때마다 늘 같이 나오는 이름이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새바”라는 이름입니다.그리고 이 이름은 다윗의 족보에 함께 나옵니다. 이것은 다윗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크고 중대하며, 그 죄가 하나님 앞에서 용서함을 받았을 지라도 그 죄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지 알게 되는 대목입니다.

다윗의 잘못은 “자신의 왕의 임무를 게을리 하는 것”이며, 이것은 “있어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 것”이며, 이것들이 간음과 살인 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 죄의 유혹의 자리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위해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지 않음으로, 마음이 나태해지고 하나님의 일이 아닌 자신의 욕망에 눈을 돌림으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일을 덮기 위해서 또 다른 죄, 거짓과 술수를 사용하여 우리야를 살인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죄는 죄를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고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아담과 하와의 죄를 짓는 모습과 유사한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하는 자리에 사단이 뱀과 함께 거짓을 논하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장소에 틀린 대상과 함께 있던 것입니다. 둘째는 보이는 것에 눈이 빼앗긴 것입니다. 좋아 보이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실이 사실은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이끄는, 하나님과 같은 신이 아닌 죄인으로 이끄는 독이 든 과실인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보며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인다고 보이는 대로 행했으나 그것이 자신과 가족, 이스라엘 전체에 큰 어려움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셋째, 아담과 하와는 그 일의 책임을 계속해서 자신이 지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가한다는 것입니다. 다윗 또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덮기 위해서 우리야를 죽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다른 사람까지도 그 죄에 동참시키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 일을 멈추는 것은 (1) 죄의 자리에 가지 않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편 1편의 고백처럼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이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2) 이후에 나올 선지자 나단의 지적처럼 그 죄를 알고 지적해 줄 수 있는 동료를 옆에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3) 더 중요한 것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 그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고백했던 시가 그 유명한 시편 51편입니다. 그 시편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깨끗케 하기를 바라며, 간구한 것 중에 10-11절에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주시고, 주 앞에서 쫓아 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예수님을 믿고서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미워할 수 있고, 무엇인가 욕망하며 탐하고 시기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거짓말하고, 간음하고, 사람을 모함하고 죽이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한 값을 치루게 하시지만, 또한 회개하고 다시 회복할 기회를 주시는 분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를 마주보고 주께 고백할 용기 입니다. 죄를 지을 때 감추지 않아야 죄가 더 커지지 않게 됩니다. 죄를 지을 때, 바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죄가 주홍 같이 붉을 지라도 흰 눈 같이 희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용서하심 은총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1) 죄를 짓고 난 뒤에 죄를 덮기 위해 다른 악한 마음을 먹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 그 죄를 다 고하며 죄에서 용서함 받고 자유로워지기를 위해서 (2) 믿지 않는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기 위해서 (3) 주일학교와 선생님들, 구역과 구역장들과, 교회 제직들을 위해서 (4) 모로코의 지진 뿐 아니라, 자연 재해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해서 (5) 주일예배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예배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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